쿠바 거리로 나오지 못한 "자유" 외침…'사전 진압'에 시위 불발

입력 2021-11-16 10:42
쿠바 거리로 나오지 못한 "자유" 외침…'사전 진압'에 시위 불발

쿠바 당국, 시위 예고되자 반체제 인사 체포·경찰 대규모 배치

아바나 등 거리 평소보다도 고요…미·스페인 등서는 지지 시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쿠바의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 움직임이 불발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EFE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가 예고된 이날 오후 3시를 여러 시간 넘긴 시점까지도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쿠바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혹시 모를 충돌을 우려해 일반 시민들도 외출을 삼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용한 모습인 것으로 전해졌다.

EFE통신은 "3시 이후 아바나의 거리는 특히 고요했다"며 "시위대가 입기로 했던 흰옷을 입은 행인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시위대를 대신해 평소보다 훨씬 많은 경찰이 제복과 사복 차림으로 시내 구석구석에 배치됐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번 시위 계획은 이미 1∼2개월 전부터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공지된 것이었다.

극작가 주니어 가르시아 아길레라(39)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은 '아르치피엘라고'라는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이날 쿠바 전역에서 '변화를 위한 시민 행진'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지난 7월 11일 경제난 등에 지친 시민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직한 이례적인 반정부 시위가 쿠바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후 4개월만에 다시 예고된 시위였다.

당시 시위 이후 쿠바 당국은 인터넷을 차단하며 시위 확산을 막고 시위 참가자 1천여 명을 무더기로 체포한 바 있다.

이번 시위에선 당시 수감된 정치범들의 석방과 더 많은 정치적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쿠바 당국은 7월 시위는 물론 새로 예고된 시위 역시 쿠바를 불안정하게 하려는 미국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시위를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5일은 쿠바가 20개월 가까이 지속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에서 벗어나는 날이기도 해서 정부는 정상화 첫날이 시위로 퇴색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쿠바 정부의 강력한 '사전 진압'에 시위 주동자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은 체포되거나 집안에 발이 묶이는 신세가 됐다.

AFP통신은 인권운동가인 마누엘 쿠에스타 모루아와 정치범이었던 그의 남편 앙헬 모야, 반정부 인사인 기예르모 파리나스 등이 최근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외신 인터뷰 등을 통해 시위 취지를 알렸던 주니어 가르시아의 경우 전날 사복 경찰과 정부 지지자 등에 집이 포위된 모습이 외신 카메라에 잡혔다. 현재 가르시아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또다른 '아르치피엘라고' 운영자 사일리 곤살레스는 붉은 옷을 입은 정부 지지자들이 집 밖에 모여 자신을 향해 '배신자'라고 외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이미 7월 시위 이후 정부의 무더기 체포 등을 지켜본 터라 시위 동참 결심도 더욱 쉽지 않은 분위기다.

시위를 지지하는 의미로 흰 셔츠를 입고 거리에 나온 에우니세 푸예스는 로이터에 "탄압의 공포 탓에 시위는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규모 시위가 불발된 뒤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은 TV 연설에서 쿠바에 대해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심으려던 미국의 "실패한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쿠바 거리는 조용했지만 이날 미국, 스페인, 중남미 각국 등 쿠바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선 쿠바 당국을 비판하고 국민을 응원하는 시위들이 잇따랐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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