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스실로 변하고 있다"…또 시작된 뉴델리 '겨울 스모그 공습'
초미세먼지 농도 WHO 기준 수십배…해마다 반복
추수 잔여물 소각·폭죽·매연 등이 원인
인도 거부에 COP26 합의문 석탄발전 '중단' 대신 '감축'으로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뉴델리가 가스실로 변하고 있어요. 정부 대책에도 나아질 기미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 와중에도 사람들은 무신경하게 오염물질을 쏟아냅니다."
15일 오전(현지시간) 인도 수도 뉴델리 시내에서 만난 로빈 조지프(24)는 해마다 이맘때 반복되는 최악의 대기오염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나는 남쪽에서 살다가 뉴델리로 와서 몇 년째 생활하는데 공기 질이 갈수록 나빠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매년 초겨울이면 시작되는 뉴델리의 '스모그 공습'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날 뉴델리 일부 지역의 PM2.5(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50∼300㎍/㎥에 달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일평균 안전 권고 기준(15㎍/㎥ 이하)의 17∼20배다.
그나마 지난 며칠간 바람이 조금 불면서 나아진 게 이 수준이다.
힌두교 축제인 디왈리를 맞아 사람들이 마구 폭죽을 터뜨렸던 지난 5일 오전에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1천㎍/㎥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도시가 스모그에 휩싸이면서 뉴델리의 상징물인 인디아게이트와 주요 건물들의 윤곽은 흐려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당국은 이날부터 1주일간 초·중·고교와 대학교에 등교 금지령을 내렸다.
당국은 학생들에게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게 했고 공무원에게는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건설 공사도 전날부터 나흘간 중단되고 있다.
인디아게이트 인근에서 만난 산텐 쿠마르(55)는 "스모그가 더 심해지는 밤이면 늘 기침을 한다"며 "눈도 따갑고 두통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뉴델리의 스모그 상황은 겨우내 지속되다가 2월은 돼야 조금 개선된다.
뉴델리가 겨울마다 최악의 대기오염에 시달리는 것은 대기에 악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이 이 시기에 겹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뉴델리 인근 여러 주의 농부들은 추수가 끝나면 논밭의 잔여물을 마구 태운다.
이런 작업은 11월 중순 시작되는 다른 작물 파종기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발생한 어마어마한 양의 재는 뉴델리 상공에 머문다. 뉴델리는 내륙 분지인데다 이때는 계절풍마저 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오염 저감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발전소를 비롯해 노후 공장과 차량이 매연을 뿜어낸다.
또 도심 빈민층이 난방과 취사를 위해 타이어 등 각종 폐자재를 태운 연기까지 더해진다.
그러다 폭죽이 쏟아지는 디왈리를 거치며 대기오염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추수 잔여물이나 쓰레기 소각 및 폭죽은 모두 당국이 금지한 상태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장의 생계와 즐거움을 위해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인디아게이트 인근에서 만난 모하마드 샤킬(27)은 "작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봉쇄 때문에 공기 질이 좀 나아졌었는데 올해부터 다시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질이 악화하면서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이도 늘었다.
아폴로 병원의 의사 수란지트 차테르지는 최근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에 "호흡 곤란과 관련해 매일 12∼14명의 응급 환자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오염으로 건강이 나빠져 목숨을 잃는 이들도 많다.
영국의 의학저널 란셋에 따르면 인도의 대기오염이 유발한 질병으로 인해 2019년에만 167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중산층 등 재력이 있는 시민들은 공기청정기를 구매해 대기오염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인도 가전업체 유레카 포브스의 마르진 R 슈로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PTI통신에 공기청정기 판매 매출이 작년보다 3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인도에서는 공기청정기 판매의 70%가 뉴델리를 포함한 수도권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마스크를 살 돈조차 없는 저소득층 등 서민에게는 고가의 공기청정기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사치품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도 나름대로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매년 대기가 악화하면 휴교령, 건설 공사 및 채석장 가동 중단, 차량 운행 홀짝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매연을 내뿜는 노후 차량을 단속하기 위해 시내 170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공기정화타워(스모그타워) 두 개도 가동하고 있다.
이 중 시내 콘노트 플레이스 인근에 설치된 공기정화타워는 높이 25m에 40개의 거대한 환풍기와 5천개의 필터 등을 갖췄다. 초당 1천㎥의 공기를 빨아들여 정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런 조치가 대기오염 개선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델리의 대기오염 수준이 워낙 심각한데다 오염 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런 장비로는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로빈 조지프는 "뉴델리에 이런 타워 몇 개를 설치한다고 해서 대기질이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며 "무엇보다 대기오염 방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지에는 대기오염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시민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시내를 활보하던 남성 모하마드 아프다브(27)는 "이 정도면 공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대기 오염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국의 대기오염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지만 인도는 최근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인도는 이번 회의에서 부자 국가들이 탄소 배출에 더 책임이 있다며 합의문 표현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합의문의 석탄발전 '중단'은 '감축'으로 바뀌었다.
BBC뉴스에 따르면 인도의 연간 탄소 배출량(2020년 기준)은 6억6천600만t으로 중국(29억1천200만t)과 미국(12억8천600만t)에 이어 세계 3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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