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120년 전 미 종군기자에게 한국인이 선물한 성조기

입력 2021-11-14 07:00
[특파원 시선] 120년 전 미 종군기자에게 한국인이 선물한 성조기

NYPL '보물들' 전시회에 잭 런던이 러일전쟁 취재 때 받은 깃발 전시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서관이자 미국 뉴욕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인 뉴욕공립도서관(NYPL)에서는 한 달 전부터 '보물들'(Treasures)이라는 제목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25년 역사의 이 도서관이 수집한 5천600만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말 그대로 '보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별하고 귀중한 물품 250여 점을 엄선해 일반에 공개한 자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NYPL의 첫 오프라인 행사인 이 전시회에 나온 소장품들은 고대 문명부터 현대까지 4천 년의 역사를 아우른다.

미국 독립의 주역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서 필사본, 구텐베르크의 성서,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사용한 책걸상, 유명 작가와 음악가들이 사용한 각종 물품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가운데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이 종군기자 시절 선물 받았다는 옛 성조기가 눈에 띄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의 초기 13개주를 상징하는 별 13개가 수놓인 옛 성조기를 "한 한국인이 잭 런던을 위해 만들어줬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본명이 존 그리피스 체이니인 그는 잭 런던이라는 필명으로 '야성의 부름', '화이트팽'(늑대개), '강철군화' 등의 작품을 쓴 세계적인 소설가다.

런던이 이름 모를 한국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미 일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의 종군 특파원으로 1904∼1905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찾으면서다.

일본군을 따라 당시 한반도 곳곳을 누빈 런던은 몰락해가는 조선 사회와 한국인들의 모습을 그린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책도 펴냈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성조기를 구체적으로 누가, 왜 런던에게 만들어준 것인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런던은 한국인이 만들어준 이 성조기를 러일전쟁 취재 기간 내내 들고 다녔다고 NYPL은 전했다.

도서관 측은 전시회 설명문을 통해 "독립과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이 깃발의 의미는 제작자와 휴대자, 둘 중 누구에게서도 잊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묘사했다.

깃발에 담긴 '독립과 불굴의 정신'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국을 가리키는 설명이지만, 러일전쟁 5년 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예견한 중의적인 언급처럼 들리기도 한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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