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벨라루스 위기…서방-러시아 신냉전 가속

입력 2021-11-11 10:58
우크라·벨라루스 위기…서방-러시아 신냉전 가속

우크라 접경 러 군사력 증강에 "우크라 독립 미 약속 확고"

벨라루스 '난민 공격' 서방 비난…러, 루카셴코 정권 지지 무력시위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발생한 위기 상황이 서방과 러시아 간 신냉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고,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확고하게 유지함에 따라 유럽연합(EU) 및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 국경 지역에 러시아가 군사력을 증강 배치한 데 대해 미국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국무부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이례적 군사 활동에 대한 보도를 우려한다"면서 "아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의 우려는 러시아가 2014년에 했던 것(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을 재연하는 심각한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국경을 따라 병력을 집결시키고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범하고서는 도발을 당했다는 허위 주장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긴장을 고조하거나 공격적인 어떤 행위도 미국의 커다란 우려"라면서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주 러시아 국경 인근 지역 및 동부의 반군 통제 지역에 약 9만 명의 러시아 병력이 집결한 상태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 3∼4월에도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군병력을 배치했다가 되돌린 바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부가 출범하던 즈음인 2014년 3월 크림반도의 크림 자치공화국을 전격 합병했다.

합병 명목은 주민투표를 통한 러시아 영토 편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점령이라고 할 수 있다.

EU와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친서방 정권 수립에 항거하는 친러시아 반군이 봉기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부터 계속되는 돈바스 지역 분쟁에서 러시아군이 친러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근거 없다고 반박하지만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은 다량의 러시아제 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2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 간 휴전이 발효된 뒤에도 동부 전선에서는 산발적인 교전이 이뤄지는 등 여전히 불안하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지금까지 1만3천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협력해 국가발전을 꾀하고 나아가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 유럽 국가의 일원으로 경제·정치 통합에 참여하고 국가안보를 보장받으려 한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를 두고 "러시아의 보복을 촉발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EU는 러시아에 에너지 자원을 의존해야 하는 취약점이 있어 '우크라이나의 탈러시아 유럽화'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벨라루스는 중동지역에서 떠난 이들을 데려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 EU 국경으로 몰아내면서 이들 국가는 화급히 국경을 봉쇄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EU는 벨라루스가 러시아를 포함해 10여 개국에서 항공기를 통해 중동발 이민자와 난민을 수도 민스크로 실어나르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들을 EU로 몰아내 EU에 부담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게 EU 측의 주장이다. EU가 벨라루스에 가한 제재에 대해 보복하려고 중동인들의 이동을 방조하거나 조장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EU는 여러 방식으로 벨라루스에 제재를 가했지만 벨라루스는 좀처럼 굽히지 않고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EU와 미국 등 서방에 강경하게 맞서는 데는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지원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번 국경 갈등의 배후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목했다.

이번 국경 갈등에 대해 러시아는 예상대로 벨라루스를 두둔하면서 서방에 책임을 돌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나토와 EU를 포함한 서방이 오랜 기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상대로 추진한 정책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서방은 이들 국가에 서방식 민주주의를 강요하고 있다. 난민들은 벨라루스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고 유럽으로 가고 싶어한다"라며 "유럽은 스스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벨라루스의 '난민 공격'에 대한 서방의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 러시아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2대의 전략폭격기를 벨라루스 영공에 보내 벨라루스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과시했다.

러시아는 EU와 미국 등 서방이 벨라루스에 친서방 정권을 세우려고 벨라루스의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러시아는 옛 소련의 일원인 벨라루스를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노골적으로 루카셴코 정권을 비호해왔다.

서방과 냉전 이후 최악의 갈등을 겪는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서방과 대결 전선에서 '전초병'으로 활용하고 있다.

EU는 벨라루스에 대해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르면 다음 주초에 벨라루스의 고위 인사와 단체, 그리고 벨라루스 국영 항공사에 대한 제재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songb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