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황청 대사 "교황, 문대통령 내외 강복…영적 유대 반영"
"한반도 둘러싼 국제정세 잘 이해…돕고 싶다는 의지 강해"
"방북 가능성·시점 속단 일러…北, 다음 수순 검토하고 있을 것"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한 것은 국내외의 큰 관심을 끌었다.
문 대통령이 천착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연계된 교황의 방북 이슈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방북을 제안했고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했다. 방북에 대한 굳은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교황은 면담을 마친 뒤 문 대통령 내외를 향해 십자성호를 그으며 강복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사전 요청도, 예고도 없이 이뤄진 것이다. 통상 보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교황청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2018년에 이어 3년 만에 다시 이뤄진 이번 2차 면담의 현장 실무 준비를 총괄하고 면담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추규호(69) 주교황청 대사도 이를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았다.
추 대사는 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과 문 대통령 사이에 영적 유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교황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추 대사는 아울러 "평소 두 분이 계기 있을 때마다 친서를 교환하며 소통하는 사이인데다 지난 8월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부임한 유흥식 대주교도 교황의 지근거리에 있어 비공식적인 교감도 증대됐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G20을 계기로 이탈리아를 찾은 정상 가운데 교황과 면담한 정상은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세 명뿐이다.
일부 정상은 교황과의 면담을 추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 대사는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각각 취임 후 교황과의 첫 대면인 데 반해 문 대통령은 두 번째 만남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임기 중 교황을 두 번이나 마주한 첫 사례다.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추 대사는 교황과 문 대통령 간 개인적인 유대감 외에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정한 국제 정세도 두 사람의 재회를 추동한 요인으로 분석했다.
날이 갈수록 심화하는 미·중 대결 국면 속에 한반도 주변 정세 역시 극도로 불안해지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는 교황이 문 대통령을 직접 만나 어떤 식으로든 돕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추 대사는 "미·중 두 강대국 간 경쟁은 치열해지고 북한은 세계적인 바이러스 대유행(팬데믹)까지 겹쳐 3년 전과 비교해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교황은 이 어려운 환경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한국의 절실함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 뒤이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반도 평화 정착과 관련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 대사는 짚었다.
최대 관심사인 교황 방북과 관련해선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됐듯 북한의 초청만 있으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공은 북한에 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은 북한이 다음에 어떤 수순을 밟을지 검토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부연했다.
교황청 내에 북한의 종교 자유 문제와 북한 체제 선전에 이용될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교황 방북에 회의적인 의견도 없지 않으나 결국 중요한 것은 교황의 뜻이며 교황청은 교황이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게 될 것이라는 게 추 대사의 설명이다.
다만, 교황 방북이 성사된다고 해도 그 시점은 속단하기 어렵다면서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는 전략적인 결단을 하기까지 상당히 밀도 있는 내부 검토와 준비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추 대사는 아울러 "교황의 방북 문제를 당파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교황의 방북이 악화하는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짚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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