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권자 또 자민당 선택…의석 줄여 '경고'
밀어붙이기·불통 정치·금품 비위에 실망…견제세력 확대
야권, 정권교체 역부족…잠재력 확인·내년 참의원 선거 주목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4년여 만에 실시된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일본 유권자는 다시 자민당을 신임했다.
자민당이 내세운 안정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다시 선택했지만, 의석수를 줄임으로써 장기간 문제로 지목된 다수당의 전횡에 경고장을 날린 양상이다.
야당은 의석을 2012년 이후 약 9년 만에 최대 비중으로 확대해 잠재력을 확인했으나 정권을 교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지 공영방송 NHK의 중간 집계에 의하면 지난달 31일 총선에서 자민당은 전체 465석 가운데 과반인 233석 이상을 확보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자민당 의석은 해산 전의 276석에는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유권자는 2012∼2017년 실시된 세 차례의 총선에서 자민당을 뜨겁게 지지했으나 이번 총선에는 '자민당 사랑'이 미지근해진 셈이다.
특정 비밀 보호법 제정·안보법제 개편 강행 등 자민당이 지난 수년간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이기 정치를 반복하자 야당이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로 보인다.
사학 재단과 권력이 유착했다는 지적을 산 모리토모(森友)학원·가케(加計)학원 사건이나 정부 행사를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벚꽃을 보는 모임' 사건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시절 벌어진 각종 의혹도 유권자 일부가 등을 돌리게 한 이유로 꼽힌다.
유권자들은 아베 내각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나 각종 현안에 관해 수긍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 '불통' 정치에도 염증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권자에 대한 금품 살포 등 정치자금 비위가 이어진 것도 자민당에 타격을 줬다.
자민당 거물이 줄줄이 패배하는 이례적 상황도 벌어졌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전 자민당 간사장, 히라이 다쿠야(平井卓也)전 디지털 담당상,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전 올림픽 담당상 등이 소선거구(지역구)에서 야당 후보에게 패배한 것으로 파악됐다.
NHK에 의하면 심지어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자민당 간사장도 지역구에서 야당 신인에게 밀린 것으로 분석된다.
아마리는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것이 패인으로 보인다. 지역구에서 패배한 거물 중에는 중복 출마한 비례대표에서 구제되는 이들이 있을 전망이다.
유권자의 불만이 고조한 상황에서 여전히 과반을 확보한 것에는 이른바 '자민당 프리미엄'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평소 일본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내각 지지층에는 자민당 정권이라서 지지한다는 이들이 꽤 많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추세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유권자가 자민당에 상당한 불만을 지니고 있음에도 야당이 대안 세력으로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는데 이번 총선에서도 한계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양상이다.
자민당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야당이 미덥지 않아서 자민당을 계속 지지하는 이들이 꽤 있는 셈이다.
이는 2012년 말까지 약 3년 3개월 이어진 옛 민주당 정권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이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때 보여준 '우왕좌왕' 대응이 일본 유권자가 자민당의 대안으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을 선뜻 택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약 7년 9개월 이어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과 아베 계승을 표방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의 폐해를 비판하며 '정권 교체'를 내걸었으나 유권자들은 여전히 자민당이 주는 안정감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주요 야당이 후보 단일화를 이뤘고 여러 지역에서 자민당과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입헌민주당 대표는 "많은 선거구에서 여당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 (단일화가) 일정한 효과가 있었다"면서 자민당이 "야당의 의견을 듣고 정중한 국회 운영을 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국은 유동적이지만 야당이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반전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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