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란 잘란] 자카르타 수놓은 거리 벽화…"'표현의 자유' 상징"
경찰, 조코위 풍자 벽화 지웠다는 비판에 벽화 경연대회 개최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인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벽화도 잘 그려요", "벽화를 그린다는 건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거죠"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는 고가도로 다리를 비롯해 대로변 곳곳에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기 흉한 그라피티가 아닌 한 경찰이 굳이 거리 벽화를 그리는 것을 막지 않는다. 자카르타주 정부 역시 코로나 보건지침 준수 등 계몽성 벽화를 적극 장려하기도 한다.
30일(현지시간) 연합뉴스 특파원은 자카르타의 경찰청 뒷마당에서 열린 제1회 벽화 경연대회 현장을 찾았다.
공원처럼 넓은 경찰청 뒷마당 벽을 따라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참여한 80개팀이 전날부터 이틀 일정으로 가로 4m, 세로 3.5m 크기의 벽화를 그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 팀당 두 명이 참여해 전날 스케치 작업을 했고, 이날 붓과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오후 5시까지 벽화를 완성했다.
인도네시아 경찰청은 얼마 전 조코 위도도 대통령 비판 벽화를 지웠다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이를 반박하는 차원에서 벽화 경연대회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예술을 통해 정부나 경찰을 비판하는걸 경찰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자 벽화 경연대회를 개최했다"며 "경찰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여름 자카르타 외곽 땅그랑 공항철도 교각 아래에서는 조코위 얼굴에 '404:Not Found'라는 글자가 적힌 풍자 벽화가 등장했다.
경찰은 8월 13일 벽화를 검은 페인트로 덧칠해 지우고, 해당 벽화를 그린 그라피티 작가를 찾기 위해 목격자 진술 청취 등 수사를 벌였다.
이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일자 조코위 대통령은 "나는 비판을 거부하지 않는다"며 괜한 일을 했다고 경찰청장을 질책했다.
경찰청장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조코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벽화 경연대회라는 이색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행사에는 자카르타의 34개팀을 비롯해 수마트라섬, 술라웨시섬, 파푸아까지 전국에서 총 80개팀이 참여했다.
경연대회 주제는 공권력 남용 비판, 정보의 올바른 전달,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정해졌다.
참가자들은 땡볕 아래 각자의 메시지를 담은 벽화를 그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자카르타에서 참여한 마이엑 프라이트노(40)와 사이풀 바흐릴(40)씨는 '올바른 확성기'라는 제목으로 벽을 뚫고 나온 확성기를 70년대 초반 경찰청장 호이깅 이맘 산토소의 초상화와 함께 그렸다.
두 사람은 호이깅 전 청장이 청렴하고, 대중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한 훌륭한 경찰의 표상이라며 이 벽화를 통해 거짓 정보가 아닌 올바른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부각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10여점 이상 벽화를 그렸다는 마이엑씨는 "인도네시아인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림을 참 좋아한다"며 "벽화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를 경찰이 막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마트라섬 븡쿨루에서 참여한 리오 코레츠(30)와 트리 위라(24)씨 형제는 코로나 보건지침을 주제로 벽화를 그리며,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경비원 모습을 만화풍으로 표현했다.
중학교 교사인 리오씨는 "오징어게임을 정말 재밌게 봤다"며 "코로나 보건 지침 가운데 거리두기와 손 씻기를 표현하는데 경비원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벽화에는 다양한 형태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등장해 코로나 팬데믹이 최대 관심사임을 반영하기도 했다.
경찰청은 스프레이 페인트통 모양의 트로피와 함께 1등팀에 5천만 루피아(415만원), 2등팀에 3천만 루피아(250만원), 3등팀에 2천만 루피아(165만원)의 상금을 각각 준비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거듭 '표현의 자유 보장'을 약속하며 이날 완성된 80점의 벽화 작품을 한동안 대중을 위해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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