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포토] 자유·풍요를 향한 기약없는 고난의 행군…걸어서 미국까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도로를 까맣게 채운 채 묵묵히 걷는 사람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표정엔 짙은 피로감이 묻어 있습니다.
27일(현지시간) 멕시코 남부 고속도로를 닷새째 걷고 있는 이들은 미국으로 가는 '캐러밴'입니다.
사막 등을 다니는 대상(隊商)을 뜻하는 '캐러밴'(caravan)이라는 단어는 최근 중미 등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 행렬을 가리키는 단어로 많이 쓰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이동하면 아무래도 군경의 저지도 뚫기 쉽고 범죄의 타깃이 될 위험도 줄일 수 있어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날짜를 정해 다 함께 이동하는 것이죠.
지금 멕시코를 걷고 있는 이들은 지난 23일 남부 국경 인근의 타파출라에서 출발한 이들입니다.
주로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아이티 등 중미·카리브해 출신들로, 과테말라에서 넘어온 후 멕시코를 통과하기 위한 비자나 망명을 신청한 후 기약 없이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무작정 출발했습니다.
처음엔 2천여 명이 출발했는데 닷새 만에 4천 명으로 불어났다고 AP통신은 전합니다.
이들의 목적지는 모두 미국입니다. 일부는 그 전에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일단 가서 그곳에서 망명 절차를 밟은 후 미국 국경까지 이동할 계획입니다.
캐러밴이 도보로만 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트럭이나 화물열차에 올라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캐러밴은 일단 지금까지 고속도로를 걷고 있습니다. 30도를 웃도는 한낮 더위를 피하기 위해 새벽부터 출발해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죠.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무거운 짐을 들고 있고 무리 중엔 어린아이들도 많습니다.
쉬지 못한 발은 물집투성이고, 걷다가 지쳐서 실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가 지면 길바닥에 고단한 몸을 누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좋은 편입니다.
2018년 전후 캐러밴 이민자들이 미 국경에 쇄도한 후 미국 정부는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 경유 국가들에 이민자 저지를 압박했고, 최근 1∼2년새 출발한 캐러밴은 번번이 군경에 막혔습니다.
그러나 최근 캐러밴 강경 진압으로 비판을 받았던 멕시코 정부는 이번엔 캐러밴 해산에 신중한 모습입니다. 멕시코 남부에 이 정도 규모의 캐러밴이 몰린 것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이라고 AP통신은 말합니다.
닷새 동안 무사히 전진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구글 지도를 기준으로 타파출라에서 중간 목적지인 멕시코시티까지는 걸어서 215시간입니다. 도중에 차를 안 타고 걷기만 한다면 하루 10시간을 꼬박 걸어도 20일이 넘게 걸립니다.
멕시코시티에서도 한참을 더 가서 미국 국경에 도달해도 미국 문이 열릴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 가득한 여정이지만 이민자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먼 미국 땅엔 가난하고 위험한 조국엔 없던 희망과 꿈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습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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