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만원에 딸 판 부모…가뭄·내전·경제난 겹친 아프간 참상
농부는 가축 팔아 연명·조혼도 횡횡…최악의 식량난 직면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탈레반이 20년 만에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내전, 가뭄, 경제난 등이 겹치면서 현지 주민들이 벼랑 끝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BBC방송은 25일(현지시간) 아프간 서부 헤라트 지역을 취재해 기아에 내몰린 주민들의 참상을 전했다.
BBC가 공개한 3분30초짜리 영상에 따르면 헤라트 외곽의 한 부모는 약 500달러(약 58만원)를 받고 걸음마도 하지 못하는 딸을 팔기로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딸을 팔지 않기를 바랐지만 다른 아이들이 굶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아버지는 "밀가루며, 기름이며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아기의 부모는 이미 500달러의 절반 이상을 받은 상태다. 이 아기는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쯤 가족을 떠나게 된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헤라트의 한 병원 의료진은 4달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의료용품을 살 비용도 고갈됐다.
BBC는 이 병원에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6개월 된 아기의 모습도 소개했다.
이 아기의 몸무게는 정상 체중의 절반도 되지 않는 상태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아기의 어머니는 "돈이 없어서 아이 중 2명이 죽음에 직면했다"고 울먹였다.
AFP통신은 이날 서부 바드기스주의 발라 무르가브 지역 등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간 상황을 조명했다.
하지 라시드 칸 마을의 촌장인 물라 파테흐는 "마지막으로 비를 본 게 작년이었는데 그 양도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뭄이 깊어진 탓에 주민들은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가축을 팔아 연명해야 했다.
파테흐는 "음식을 사기 위해 가축을 팔았다"며 올해 양치기 2명이 마실 물이 없어 산에서 죽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만 하더라도 양 300마리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20마리로 줄어든 상태다.
파테흐처럼 팔 가축이라도 있는 주민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부는 헤라트의 한 가족처럼 딸을 팔거나 조혼을 시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통신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는 올해 20가구가 돈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어린 딸을 결혼시켰다.
이미 결혼한 15살 난 딸에 이어 7살짜리 딸을 시집보낼 예정인 비비 옐레흐는 "가뭄이 계속된다면 두 살, 다섯 살 딸도 뒤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의 165가구 중 45가구는 내전과 식량난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다른 마을의 주민 하지 자말은 "들판은 파괴됐으며 지난 2년간 6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탄했다.
탈레반은 지난 8월 15일 아프간 집권에 성공하면서 긴 내전을 끝냈지만 이후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등에 예치된 아프간 중앙은행의 외화 90억 달러(10조5천억원)가 동결된 데다 국제사회의 원조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와중에 물가 폭등, 실업자 폭증 등이 이어지는 중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전날 긴급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어린이 등 수백만 명의 아프간 국민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인도적 지원을 위한 자금 동결 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은 아프간 인구 3천900만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천280만명이 극심한 식량 불안정과 기아 상태에 맞닥뜨렸다며 "이 수치는 두 달 전에는 1천400만명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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