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중국, 갈등 넘어 서로에 손내밀어…미국 벗어나 독자외교
중국과 인권·대만 문제 등 마찰 빚지만 '전략적 자율성' 선회
최대 교역 관계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추구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유럽연합(EU)과 중국이 해묵은 갈등을 넘어 전략적 협력 관계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롯해 대만, 무역 마찰을 둘러싸고 양측은 긴장 관계였지만 강대국 간 역학 관계에 변하고 EU가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U에서는 최근 미국에 의존하는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의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 다른 체제와 전략적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미국의 일방적인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과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출범으로 EU는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회의가 커진 터다.
이전과 다른 국제정세에 직면한 EU는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이고 나아가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 경제적인 관계뿐 아니라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중국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대만 문제 등 외교적 갈등에 대응하는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을 중시해야 할 필요가 생겨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EU와 중국은 최근까지 리투아니아가 자국 주재 대만 공관을 '타이베이 대표부'에서 '대만 대표부'로 격상한 일과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 인권 문제를 둘러싼 공방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
EU는 3월 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계 소수민족 탄압과 인권 유린을 이유로 중국 관리 4명과 단체 1곳을 제재했다. 이에 중국은 즉각 유럽의회와 네덜란드·벨기에·리투아니아 의회 의원과 EU 이사회 정치안전위원회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EU는 체제가 다른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유럽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경계해왔다. 이 때문에 EU와 중국은 여러 차례 무역 분쟁을 빚었고 인권 문제 등 정치적 이유로 지난해 체결된 'EU와 중국 간 포괄적 투자협정'(CAI)이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또 중국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대응해 무역·사회기반 연결 계획인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EU 최대 교역국이 된 상황에서 투자협정이 있든 없든, 양측 간 경제 관계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는 지난해 EU와 중국과 교역액이 5천860억 유로(약 781조원)를 기록해 중국이 EU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라고 밝혔다. EU와 미국의 교역액은 5천550억 유로(약 740조 원)로 이보다 적다.
EU는 최근 잇따라 중국과 전략적 협력 확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달 21∼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원국 정상에게 보낸 서한에서 "EU의 이익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자율적인 행동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중국과 협력관계를 증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미셸 의장은 1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에서 EU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유럽과 중국은 정체 체제와 발전 모델이 서로 다르지만 모두 다자주의를 지지하며 코로나19 퇴치, 세계 경제 회복, 기후변화 대응, 지역 평화와 안정에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EU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엄수하며 대만 문제에 대한 정책을 변경한 적이 없다"며 "EU는 국제 관계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셸 의장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것은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시 주석도 이 통화에서 "중국은 항상 중국-EU 관계 발전에 성의를 가지는 동시에 주권과 안보 이익을 확고히 수호할 수 있다"며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견지하고 시비를 분별해서 중국-유럽 협력 진전을 추동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EU는 '전략적 동반자'라고 규정하면서 EU 측에 전략적 소통을 강화할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세계 정책에 EU가 거리를 둘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말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와 회담에서 미국 주도의 오커스 출범을 우려하면서 중국과 EU 간 전략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과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임을 앞두게 되자 중국은 EU 지도부와 접촉을 늘려 EU와 협력관계 확대를 꾀하는 모습이다.
메르켈 총리는 재임 16년 동안 12차례나 중국을 방문할 정도로 중국을 중시하면서 경제 협력을 끌어내는 실용적인 대(對)중국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13일 메르켈 총리와 고별 영상통화에서 메르켈 총리가 재임 중 중국-독일 관계와 중국-EU 관계 증진에 기여했다고 호평했다.
songb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