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위드코로나] ⑤ 백신 패스 쥐고 '가본적 없는 길' 떠난 유럽

입력 2021-10-17 09:05
[지구촌 위드코로나] ⑤ 백신 패스 쥐고 '가본적 없는 길' 떠난 유럽

여름 휴가철 앞두고 도입…접종 증명서 없으면 일상 불편

접종 증명 위조 사건도 발생, 백신 의무화 반대 여론도 거세



(제네바=연합뉴스) 임은진 특파원 = 스위스 제네바에서 예약을 위해 식당에 전화를 걸면 종업원이 묻는 말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맞으셨습니까? 백신 접종 증명서 지참 부탁드립니다."

식당에 도착하면 종업원은 백신 접종 증명서의 QR 코드와 증명서 소지자가 동일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확인되면 그제야 주문을 받는다.

오스트리아 빈-슈베하트 국제 공항에선 비행기에서 내리면 수하물을 찾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는 증명서를 확인하는 간이 검역소다.

검역관에게 증명서와 여권을 제시한 뒤에야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거나 감염 뒤 회복했거나 진단 결과 음성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이른바 '그린 패스'(백신 패스)를 정식으로 도입했다.

이 증명서 소지자에게는 EU 27개 회원국은 물론, 스위스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을 오갈 때 별도의 격리나 추가 검사가 면제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백신의 불평등한 접근 등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가혹한 봉쇄 조처를 경험한 유럽은 백신 증명서 제도를 강행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과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인도에서 처음 보고된 델타 변이가 유럽에서도 확산하자 유럽 각국은 입·출국 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백신 패스를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방역과 일상 회복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두 목표 사이에서 최적점을 찾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본 것이다.

백신 패스를 손에 쥐고 이전에 가본 적 없는 위드 코로나라는 길에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특히 각국 정부가 가을 들어 주춤해진 백신 접종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적용 대상을 확대하면서 증명서 제시는 이제 북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



프랑스는 지난 7월 영화관과 박물관 등 50명 이상 모이는 문화 시설을 시작으로 8월 식당과 카페 등으로 접종 증명서 제시 장소를 확대했다.

스위스도 9월부터 식당과 술집 등 실내 공공장소 입장 시 백신을 맞았다는 QR 코드 제시를 의무화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역시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에만 음식점 내부 식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 15일부터 공공·민간 영역을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에 나갈 때 백신 패스를 소지하도록 했다.

백신 패스가 없으면 무급 정직 처분을 받으며, 고용주는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처럼 백신 증명서 없이는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일상생활을 하기가 불편해지자 가짜 접종 증명서를 사고파는 사건마저 곳곳에서 일어났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백신 접종 센터 직원 등 위조한 증명서를 판매한 일당 4명이 체포됐다.

프랑스에서는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받고 접종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사례를 넘어서 의사 명의를 도용해 허위로 증명서를 발급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더불어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에서는 백신 접종 의무화와 백신 패스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eng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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