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르포] 툭하면 정전에 발전기 필수품…신호등마저 먹통
공장·식당 운영 한인들 "발전기 돌리지만 두 배 오른 기름값에 문 여는 게 손해"
신호등 갑작스러운 정전에 영화처럼 차들 뒤엉켜…달러화 부족에 발전소 운영 중단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의 국가비상사태 8개월째로 접어든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최근 들어 시민들의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예고 없이 발생하는, 그래서 일상이 되다시피 한 정전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양곤에서 식당을 하는 한인 A 씨는 지난 14일 기자에게 정전 때문에 장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요즘에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정전이 된다"며 "매번 발전기를 돌려야 하고, 차로 음식 배달까지 하면 비상사태 선포 전보다 두 배나 올라버린 기름값에 문 열고 있는 게 오히려 손해"라고 말했다.
한국 대기업에 다니는 민 딴(가명) 씨도 정전에 속이 터지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재택근무를 주로 해 일부러 돈을 들여 집에 유선 인터넷도 설치하고, 노트북도 마련했다"면서 "그런데 요즘처럼 정전이 자주 발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집에 비싼 발전기를 설치할 수 없다보니 차라리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는 게 더 낫다"고 덧붙였다.
기자도 며칠 전 기사를 쓰다가 전기가 나가 하는 수 없이 발전기가 있는 시내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경험을 했다.
군부가 집권하기 전 문민정부 당시에도 양곤 시내에서 정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양곤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인 B씨는 "과거 문민정부 초기에는 정전을 지역 순환제로 하면서 정전 예고를 해줘서 준비라도 할 수 있었다"고 뒤돌아봤다.
그는 "그러나 작년에는 정전 사태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끊긴다"면서 "일을 해야 하니 발전기를 돌려야 하는데 너무 많이 오른 기름값에 대책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양곤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한인 C씨의 말을 들어보면 잦은 정전은 누구보다도 전기로 공장을 돌려야 하는 이들에게 맥빠지는 일이다.
C씨는 "정말 어렵게 주문을 받아 이제야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요즘 그나마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 이익을 예상했다"면서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전기 사정이 최악이어서 발전기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든다"면서 "되레 손해 보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불안해했다.
정전되면 해당 지역의 교통 신호등도 모두 함께 꺼진다.
지난 14일 기자는 양곤 시내 사거리에서 정전으로 신호등이 꺼지면서 마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차량이 뒤엉키는 모습을 목격했다.
택배업을 하는 한인 D씨는 "정전이 잦다 보니 양곤 시내에서 꺼진 신호등 때문에 곳곳에서 차량 정체가 심하고 서로 먼저 가려다 다툼은 물론 접촉 사고도 잦다"면서 "이렇게 되면 배달 시간도 더 많이 걸려 연료비 문제도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갑자기 잦아진 양곤 지역 정전에 대해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양곤의 두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가 지난 7월부터 가동을 중단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양곤의 따케타 구에 건설된 400메가와트(㎿)급 LNG 발전소는 이미 운영을 중단했고, 양곤 외곽 띨라와 특별경제구역 내에 있는 350㎿급 LNG 발전소는 LNG 비축분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50㎿의 전력만을 생산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발전소 가동이 중단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비상사태 선포 이후로 달러화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 달러화가 부족하게 된 데 있다.
두 발전소 운영을 담당한 외국 업체에 전기 대금의 일정 부분을 달러화로 지급해야 하는데, 군정은 미얀마 짯화로만 지급했다.
LNG 가격까지 오른 상황에서 달러화로 LNG를 들여와야 하는 운영업체는 난색을 표하면서 결국 운영이 중단됐다고 이라와디는 전했다.
이라와디는 아직 우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향후 건기에는 정전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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