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 "성직자 성범죄 책임, 교황청에 물을 수 없어"
사제 성폭력 피해자들이 낸 소송 기각…"교황청 면책권 고려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교황청에 직접 물을 수는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ECHR이 교황청의 면책권에 관해 내린 첫 결정이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ECHR은 유년 시절 성직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24명이 '교황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ECHR은 바티칸은 소송을 당할 수 없는 주권국가이며, 이러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 법원에서 임의로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벨기에 법원의 판결을 재확인했다.
ECHR은 "교황은 성직자들의 지도자가 아니다"라는 벨기에 법원 판결을 인용해 "벨기에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교황청에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소송은 2011년 시작돼 10년간 이어져 왔다.
피해자들은 성직자들의 성범죄는 교황청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며, 교황청이 피해자들에게 1명당 1만유로(약 1천378만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벨기에 법원은 주권국가로서 교황청이 가진 면책권을 고려할 때, 교황청에 대한 판결 권한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원고들은 2017년 사건을 ECHR로 옮겨왔지만, 이번에도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ECHR 재판부 내 반대 의견도 있었다.
다리안 파블리 판사는 벨기에 법원이 교황이 주교들을 임면한다는 증거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교황청이 성직자의 성폭력 사건 처리에 정책적으로 침묵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ECHR은 벨기에 법원이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사실상 박탈했다는 점을 인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고 측 변호인도 ECHR의 결정에 대해 "피해자들의 권리가 교황청의 면책특권보다 덜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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