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드디어 건립

입력 2021-10-20 11:00
일본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드디어 건립

나가사키 평화공원서 내달 6일 제막식…추진 8년 만에 결실

비문에 징용 관련 '본인 의사에 반해'…영문엔 '강제로 노역'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된다.

20일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건립위원회와 후쿠오카총영사관 등에 따르면 다음 달 6일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위령비 제막식이 열린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6년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약 7만4천명이 사망했다. 이 중 수천명~1만명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출신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제에 의해 공업 지역인 나가사키로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 노동자 등 우리 동포가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다른 원폭 투하 지역인 히로시마시에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현지 평화기념공원에 진작에 건립돼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날인 8월 5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렸지만,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었다.

이에 2013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나가사키본부를 중심으로 건립위원회가 결성돼 나가사키시 평화공원 내 위령비 건립이 추진돼왔다.

그러나 나가사키시 측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적 배경인 강제 징용 관련 비문 내용과 위령비 디자인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시 당국의 이런 태도는 우익 성향의 현지 단체가 한국인 위령비 건립을 저지하기 위한 인터넷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반대 목소리를 높인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2015년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당시 강제노동 관련 한일 외교 갈등이 불거지면서 나가사키시가 중앙 정부의 눈치를 본 것으로 보인다.

위령비 건립위와 후쿠오카총영사관이 끈질기게 시 당국과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전개해 올해 여름 드디어 건립 허가를 받아냈다.



비문 내용과 관련해선 시 당국이 반대한 '강제 징용'이라는 표현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넣는 것으로 절충했다.

위령비 안내문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노동자, 군인 및 군무원으로 징용, 동원되는 사례가 증가했다. 나가사키시와 주변 지역에 (조선인) 약 3만5천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약 7만4천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수천명에서 1만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동포도 목숨을 잃었다"고 기술됐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은 2015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사토 구니(佐藤地) 주(駐)유네스코 일본대사가 한국 등이 제기한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됐다고 밝힌 것이 근거가 됐다.

위령비 안내문은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기술돼 있는데 영문에는 '강제로 노역했다'(forced to work)는 표현이 들어갔다.

현재 나가사키시 평화공원 한쪽 구석에는 1979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주도로 건립된 작은 크기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재일민단 주도로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진 8년 만에 결실을 본 셈이다.

건립위는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와 이희섭 후쿠오카총영사, 여건이 민단 단장 등 한국 측 인사는 물론 나가사키현 지사와 나가사키시 시장 등 일본 측 인사도 위령비 제막식에 초대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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