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자료 요구 거부하면 공공조달 참여 제한될수도"
한미경제연구소 "자료 요구 이례적인 것 아냐…미국은 삼성과 협력 희망"
(워싱턴=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삼성전자[005930] 등 반도체 업체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공 요구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없고 이를 거부하면 미국의 공공조달시장 참여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 마크 토콜라 부소장 등 연구진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KEI 사무실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동행 한국 취재기자단과 만나 "미국 정부의 (반도체 시장) 개입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1940년대에 AT&T에 트랜지스터 기술을 업계에 공유할 것을 요청하는 등 미국 정부가 과거에도 기술 보급과 국내 산업 성장을 돕기 위해 기업에 정보 공유를 요구했던 적이 있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대부분의 경우 미국 정부는 기업으로부터 맹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를) 취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기업들과) 협상을 한다"며 "미국 정부는 삼성을 미국 경제에서 협상할 만한 중요한 기업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의 바람은 삼성과의 협력이지, 대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정부는 다른 기업에도 같은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요구는) 삼성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며 "미국 시장에서 삼성의 정보가 동종 업체에 알려지더라도 삼성의 생산 능력을 미국 기업이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연구진은 미국 정부의 요구를 '자발적인 요청'(voluntary request)이라고 표현했다.
삼성이 이를 거부할 경우 취해질 수 있는 조치를 묻는 말엔 "향후 공공 조달 참여가 제한될 수도 있다"며 "공공 부문에서 일하거나 (미국) 정부에 판매하는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자료 제공) 요구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토콜라 부소장은 "미국 정부는 서로 경쟁이 치열한 회사들과 오랫동안 협력한 경험이 있다"면서 "특히 국방 분야에서 그런 경험이 있는데, BAE시스템스(British Aerospace Systems) 같은 외국 회사가 록히드마틴과 같은 미국 경쟁업체에 민감한 정보가 누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국 정부와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BAE시스템스는 협력 대가로 수익성이 있는 미국 국방 조달 시장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가 반도체 칩 수를 늘리는 것인 만큼 삼성이 거부해도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도 언급했다.
또 "애플 같은 미국 대표 기업의 공급망을 위협하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에 부담스러운 요구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부당한 대우가 있으면 미국 국내 업계의 항의도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별 격차 문제 해소 방안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재정적 협력을 강조했다.
연구진은 "미국과 한국은 늘어난 공중 보건 지출에 대처하기 위해 다자간 기구를 통해 협력해야 한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특별인출권(SDR)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지만, 더 많은 공공 지출을 하는 것이 더 책임감 있는 정책 방향"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남북미중'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토콜라 부소장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종전 선언의 목표가 남북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북한이 '회담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정부의 논의 발전 방향과 목표가 더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미경제연구소는 한미 관계를 연구하는 비영리 독립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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