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사장 승진에 담긴 뜻은…경영 승계·신사업 투자 가속화
현대重 상장으로 승계 환경 조성…그룹사업 안정화에 경영 전면 등장
'수소드림 2030 로드맵' 등 신사업 이끌 듯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현대중공업그룹이 오너가 3세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267250] 부사장을 사장으로 전격 승진시키면서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으로부터의 경영 승계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특히 정 신임 사장이 그동안 수소,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 발굴을 진두지휘해 온 점을 고려하면 조선 등 기존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의지가 이번 인사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정 사장의 승진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주요 조선 계열사인 현대중공업[329180]과 '캐시카우'인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올해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부터 예견됐다.
현재 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은 정 이사장과 장남인 정 사장이 각각 26.6%, 5.26%를 보유 중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009540]을 통해 상장 전 현대중공업의 지분 100%를 보유했고, 현재도 현대오일뱅크 지분 74.13%를 갖고 있다.
만약 정 사장이 부친의 지분을 상속받아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두 계열사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일각의 우려에도 지난달 현대중공업 상장이 크게 성공하면서 정 사장의 '무난한' 승계를 위한 환경이 조성됐고, 결국 정 사장은 이번 인사로 경영 최일선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이에 더해 두산인프라코어의 인수 마무리로 조선·에너지·건설기계라는 그룹 사업의 삼각편대가 안정적으로 꾸려지면서 정 사장이 주도하는 미래산업 투자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앞서 2018년 경영지원실장 겸 부사장을 맡으면서 그룹 신사업과 인수합병(M&A)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지난 2월 현대글로벌서비스가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로부터 6천460억원의 지분 투자를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투자공사(KIC)와 AI·로봇, 수소연료전지, 선박 자율운항 등 신산업 분야 M&A을 위한 1조원 규모의 공동 투자 협약 체결을 이끌기도 했다.
특히 그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대표적 미래 성장계획으로 밀고 있는 '수소드림 2030 로드맵'을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로드맵은 각 계열사의 인프라와 기술 경쟁력을 총결집해 2030년까지 육상과 해상에서 수소의 생산, 운송, 저장, 활용에 이르는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사장은 이 같은 그룹의 미래 비전을 홍보하기 위해 사촌 형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주도로 지난달 열린 국내 최대 수소 박람회 '수소모빌리티+쇼'에 그룹 대표로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전문 경영인 출신인 권오갑 회장이 현대중공업그룹을 대표해 재계 행사에 참석한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었다는 평가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로 권 회장이 조선·건설기계 등 기존 사업을, 정 사장이 수소·AI 등 신사업을 각각 맡으면서 사실상 경영이 이원화될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정 사장은 이번 인사로 권 회장과 함께 현대중공업지주의 공동대표에도 내정됐다. 또 그룹을 대표하는 조선 부문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의 대표도 가삼현 부회장과 함께 맡게 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상장 성공으로 기업 승계에 속도가 붙으면서 인사도 이전보다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중공업의 신사업 추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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