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평화통일"·차이잉원 "현상유지"…슬쩍 '올리브 가지'

입력 2021-10-11 14:06
시진핑 "평화통일"·차이잉원 "현상유지"…슬쩍 '올리브 가지'

쌍십절 정면 대립에도 상황 추가 악화 방지 필요성에는 공감대

미중도 충돌 방지·경쟁 관리 모색 행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과 대만 양쪽에서 모두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신해혁명 110주년을 계기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대외 메시지 행간을 들여다보면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원칙을 강경하게 천명하면서도 당면한 갈등이 극단적 위기로 비화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서는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상대방에 슬쩍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무력통일' 위협 거둔 시진핑, 차이잉원도 "경솔 행동 안 해"

전례 없는 중국의 초대형 공중 무력 시위로 대만 일대의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된 가운데 외교가에서는 지난 9일 중국의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과 10일 대만의 중화민국(대만) 110주년 건국 기념일(쌍십절) 행사에서 시 주석과 차이 총통이 각각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것인지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시 주석과 차이 총통 모두 국내외 청중을 향해 강경한 자기 원칙을 고수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공격적 표현으로 상대방을 자극하지는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 주석은 9일 연설에서 "완전한 조국 통일의 역사 임무는 반드시 실현해야 하며 틀림없이 실현할 수 있다"고 양안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으레 그랬듯이 '대만 독립 분자'들을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시 주석이 '무력 통일' 가능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평화적 방식의 조국 통일은 대만을 포함한 중화민족 전체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2019년 1월 '대만 동포에 고하는 글 발표 40주년 기념회' 연설에서 노골적으로 '무력 사용 옵션'을 거론한 것을 비롯해 그간 대만 문제와 관련한 중요 메시지를 발표하는 자리마다 대만에 공포심을 안기는 거친 압박성 표현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날 연설에서는 의도적으로 발언 톤 조절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외 강경 입장을 천명할 때 시 주석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 정상들이 쓰지 않는 거친 수사를 동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때 시 주석은 "그 어떠한 외국 세력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압박하며 노예화하는 것을 중국 인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누가 이런 망상을 하면 14억 중국 인민들의 피와 살로 만든 강철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차이 총통 역시 10일 연설에서 "대만인이 압력에 굴할 것이라는 환상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대중 강경 입장을 피력하기는 했지만 현재 대만이 누리는 자치를 유지하되 공식적인 독립 선포로 나아가지는 않는 '현상 유지'를 강조함으로써 중국 측의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차이 총통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의 호의와 약속은 변함이 없다"면서 "현상 유지가 우리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향해 "대만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대만 일각의 예상과 달리 쌍십절 행사일인 전날 평소 수준인 3대의 군용기만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들여보내며 추가 대규모 무력 시위를 벌이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시 주석이 공개적인 '무력 통일' 위협을 자제하는 선에서 먼저 대만에 어느 정도의 '호의'를 보였고, 공을 넘겨받은 차이 총통도 이튿날 '현상 유지'를약속함으로써 양측이 최근 한층 날카로워진 대립 속에서도 서로를 추가로 자극하는 것을 자제한 측면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INDSR)의 쑤쯔윈(蘇紫雲)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대만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차이 총통의 발언은 기본적으로 중국 측에 올리브 가지를 내민 것"이라고 해석했다.

◇ 미중 신냉전·양안대립 근본틀은 그대로…"최소 소통 채널 필요"

자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대만을 되찾는 것을 중대한 역사적 책무로 인식하는 중국과 거대한 중국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생활을 지켜나가려는 대만의 입장 간에 거대한 간극이 있다.

따라서 '현상 유지'는 비록 양측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비록 근본적 전환점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대만이 최소한의 갈등 완화 방지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듯한 움직임은 미국과 중국이 전면적 경쟁 속에서도 부분적 협력을 모색하고 극한 충돌을 방지하려는 방향을 모색 중인 가운데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달 1∼4일 중국이 총 149대의 군용기를 동원해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서 벌인 초대형 무력 시위는 공교롭게도 미중 정상 간 화상 회담 합의가 도출된 지난 6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楊潔?)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 간의 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끝났다.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무력 시위를 통해 의도적으로 '대만 위기'를 급격히 고조시키면서 대만 문제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자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각인시키고 미국과 대만이 '현상 유지'를 벗어나는 수준 이상으로 밀착하지 못하게 견제구를 던졌다는 분석도 있다.

아울러 내년 가을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의 문을 공식적으로 열려는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이 미중 간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있는 대만에서의 군사 모험을 감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한 만일 대만 일대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시 주석의 장기 집권으로 가는 주요 징검다리가 될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불참하는 서방 국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중국에는 부담 요인이다.

하지만 부분적인 긴장 완화 모색 분위기 속에서도 미중 신냉전과 양안 대립이라는 구도에는 근본적 변화가 없기에 중국과 대만 간, 대만을 지지하는 미국과 중국 간 우발적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추궈정(邱國正) 대만 국방부장은 지난 6일 입법원(국회)에 출석해 현재가 자신이 군인이 된 이후 40년 동안 가장 엄중한 시기라고 평가하면서 중국이 2025년이 되면 전면적으로 대만을 침공할 힘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따라서 중국과 대만 양측이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소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오춘산(趙春山) 대만 단장(淡江)대 명예교수는 대만 중앙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차이 총통의 양안 정책은 '중국에 대항해 대만을 지키는 것'(抗中保台)인 반면 중공의 정책은 '대만 독립 세력에 반대하고 통일을 촉진하는 것'(反獨促統)으로서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다르다"며 "현재 양안 간 의사소통 통로가 없어 전략적 상호 의심이 형성되기 쉬워 쌍방이 반드시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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