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트뤼도 총리, 첫 원주민 추념일에 가족 휴가 '눈총'

입력 2021-10-02 12:04
캐나다 트뤼도 총리, 첫 원주민 추념일에 가족 휴가 '눈총'

오타와 공식 행사에 불참…"기숙학교 비극 외면 뺨 때린 격"



(밴쿠버=연합뉴스) 조재용 통신원 =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원주민 과거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첫 국가 지정 기념일에 공식 행사에 불참한 채 가족 휴가를 떠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1일(현지시간) 일간 글로브앤드메일 등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는 국정 공휴일인 '진실화해의 날'의 첫해 시행일인 전날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 서부 연안의 관광도시 토피노 시에서 휴가 일정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의 날'은 지난 5월 BC주 내륙의 한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아동 유해가 집단 발견돼 국민적 충격이 일면서 어두운 과거사를 기리기 위해 매년 9월30일을 법정 공휴일로 정한 기념일로 이번이 시행 첫해다.

전날 오타와 의사당 앞에서는 정부와 원주민 단체가 참석하는 공식 행사가 열렸고 공영 CBC 등 주요 방송은 종일 방송으로 원주민 관련 프로그램을 특별 편성하는 등 캐나다 전국이 과거 원주민 아동의 비극을 되새기며 첫 추념일을 보냈다.

그러나 트뤼도 총리는 지난달 29일 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전야제에만 참석한 뒤 정작 행사 당일에는 오타와를 떠나 가족들과 함께 토피노의 바닷가를 거니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토피노는 밴쿠버섬에 위치한 BC주 주도(州都)이자 캐나다 서부 연안의 대표적 관광 휴양 도시이다.

행사 당일 대외적으로 공개된 트뤼도 총리의 일정은 오타와에서 개인적 면담을 하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실제 총리 전용기는 그의 가족을 태운 채 토피노로 향한 것으로 포착됐다고 글로브지는 밝혔다.

트뤼도 총리의 행선지가 확인되자 그제야 총리실은 총리 일가의 실제 위치를 확인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총리실의 앤-클라라 베일런코트 대변인은 트뤼도 총리가 현지에서 며칠간 가족과 함께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일런코트 대변인은 트뤼도 총리가 기념일 행사인 전야제에 참석한 뒤 당일에는 옛 기숙학교 출신 원주민들과 대화를 가졌다고 전했으나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글로브지는 전했다.

원주민 사회와 정가에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캐나다 원주민여성협회는 이날 트뤼도 정부가 스스로 정한 기념일에 정작 자신은 가족과 휴가를 떠난 총리의 결정은 충격적이고 절망적이라고 개탄했다.

린 그루 협회 대표는 원주민에 대한 과거 트뤼도 총리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며 "정부가 나서 원주민 기숙학교의 비극을 기리도록 해놓고 정작 자기는 그럴 시간이 없다니 총리 언행의 공허함이 믿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분노했다.

또 BC주 원주민대표협회는 성명을 통해 트뤼도 총리의 행사 불참을 '오만한 위선'이라고 비난하고 "기숙학교 비극을 외면, 생존자들의 뺨을 때린 셈"이라고 공박했다.

이어 성명은 "만약 기념일이 총선 전이었으면 트뤼도는 양 무릎을 꿇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5월 아동 유해 집단 무덤터가 처음 발견된 BC주 캠루프스의 원주민 부족 대표는 트뤼도 총리에게 현지 추념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냈다면서 "그가 이 곳에 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우회적으로 유감을 표시했다.

또 제1야당 보수당의 첼시 터커 대변인은 트뤼도 총리의 평소 행동 패턴이 다시 드러났다며 "그는 화해에 대해 온갖 좋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결코 실행하는 법이 없다"고 비난했다.

jaey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