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350조 헝다 23일 첫 고비…'중국판 리먼사태' 오나

입력 2021-09-21 10:41
수정 2021-09-24 18:23
부채 350조 헝다 23일 첫 고비…'중국판 리먼사태' 오나

은행 이자 지급일 후 일부 채권 만기…디폴트 유력 관측 속 파산설까지

"부동산 업체들, 헝다 쓰나미서 익사 중"…국유은행 충격 전이 가능성에 긴장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부채가 350조원에 달하는 중국 최대 민영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유동성 위기가 오는 23일로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지난 20일이 은행 대출 이자 지급일이었던 가운데 23일은 헝다의 일부 회사채 쿠폰(채권 이자) 지급이 예정된 날이어서 업계에서는 이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헝다의 부채 상환 능력을 일차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 디폴트 수순 가는 '대마' 헝다…부동산 업계 전체 '휘청'

21일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23일 헝다가 발행한 5년물 채권의 이자 8천350만 달러(약 993억원) 지급일이 도래한다.

다만 채권 계약서상으로는 예정된 날로부터 30일 이내까지는 지급이 이뤄지지 않아도 공식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낸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헝다는 또 이날 2억3천200만 위안(약 425억원)의 위안화 채권 쿠폰을 지급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헝다는 지난 20일까지 은행 등 금융 기관에 일부 대출 이자를 내야 했지만 헝다가 정상적으로 이자 지급을 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의 은행들은 중추절(中秋節) 연휴로 20∼21일 업무를 하지 않아 헝다가 이번에 이자를 제대로 냈는지는 연휴 후 첫 근무일인 22일 이후 공식적으로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5일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도시농촌건설부가 주요 은행들과 회의에서 헝다가 오는 20일 예정인 은행 대출 이자 지급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헝다가 이미 많은 협력업체들에 공사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등 극도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어 금융권 대출이나 채권 발행으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길이 막혀 결국 디폴트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급부상했다.



중국 일각에서 파산 관측까지 제기된 헝다의 작년 말 기준 총부채는 1조9천500억 위안(약 350조원)에 달한다.

이 중 헝다가 은행과 신탁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자금 규모만도 5천718억 위안(약 105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의 만기가 올해 안에 몰렸다.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부동산 개발업체 중 하나이던 헝다의 위기는 전체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로 전이되면서 업계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상태다.

SCMP는 헝다뿐만 아니라 최근 부동산 판매 실적이 부진하고 신용등급이 내려간 광저우푸리(廣州富力·R&F)와 화양녠(花樣年·Fantasia) 그룹 상황도 부정적이라면서 이들 기업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20일 연휴 중 문을 연 홍콩 증시에서 헝다를 위시한 중국 본토 및 홍콩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대표 지수인 항셍지수가 3% 급락하는 등 증권·채권 시장에서 공황에 가까운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의 채권 애널리스트인 저우촨이는 SCMP에 "가장 나쁜 부분은 헝다가 붕괴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의 주택 건설업체들이 헝다가 초래한 쓰나미에 익사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큰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에는 향후 몇 달간의 유동성 고갈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오랜 중국 부동산 시장의 호황 덕분에 손쉽게 대규모 차입에 의존해 사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중국 당국이 선제적 금융 위험 제거와 주택 가격 안정을 목표로 삼아 부동산 개발업체와 주택 구매자들에게 흘러가는 자금을 강력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업 환경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다. 당국의 지침에 국유은행들은 신규 대출이나 차환을 꺼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은행은 만기가 오지 않은 대출까지 서둘러 회수에 나서면서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자금 유동성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 부동산 거품이 낳은 '회색 코뿔소' 출현하나



중국 안팎에서는 중국의 고속 성장을 뒷받침해온 한 축인 부동산 업계가 무너지면 이들 업체와 거래한 대형 국유은행들이 천문학적인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면서 금융 시스템에 큰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헝다의 중국 내 거래 은행에는 공상은행과 농업은행, 민생은행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중국 투자를 확대한 것이 '비극적인 실수'라고 비판하면서 "블랙록의 펀드매니저들은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위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일 이런 우려가 현실화한다면 비록 구체적인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크게 봐서는 꾸준히 거품 우려가 지적되어 온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금융 위기로 번졌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중국판 리먼 사태'가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아울러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부동산 거품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는 점에서 당면한 부동산발 충격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회색 코뿔소'의 출현이 될 것으로 평가기도 한다.

다만 중국 정부가 이대로 방치할 경우 장래 자국 경제에 큰 우환이 될 것으로 보고 능동적으로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부채 감축을 추진하는 와중에 헝다발 위기가 촉발된 것은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 발생 배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중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 미국보다 훨씬 낮은 편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은 헝다가 '대마'(大馬)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원칙에 따라 '질서 있게' 넘어진다면 그 충격이 부동산 업계에 그치고 금융 시스템 위기로까지 전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시사 중이다.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 노릇을 하는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環球時報) 총편집인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일부 사람들이 헝다가 파산하면 리먼 브러더스 도산 사태처럼 금융 폭풍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지만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관련된 몇몇 전문가들도 내게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중국의 금융·자본 시장은 여전히 헝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헝다 채권 투매가 더 폭넓은 회사채 시장의 위기로 전이될 것인지는 헝다가 은행들로부터 시간을 더 벌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어지러운 디폴트는 광범위한 (위험) 전이에 관한 공포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는 시진핑 정부가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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