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재자다"…거침없는 40세 대통령 엘살바도르 부켈레

입력 2021-09-21 07:42
"나는 독재자다"…거침없는 40세 대통령 엘살바도르 부켈레

선 넘나드는 행보로 끊임없이 논란…트위터 자기소개 '독재자'로 바꿔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엘살바도르의 독재자."

20일(현지시간)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트위터에 적힌 자기소개다.

해킹당한 게 아닌가 의심할 만도 하지만, 트위터 '헤비 유저'인 부켈레 대통령이 여러 개의 트윗을 올리는 동안에도 이 문구는 바뀌지 않았다.

자신을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엘살바도르 안팎 반대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라일라(딸)의 아빠"로 돼 있던 소개를 자신이 직접 바꾼 것이다.

부켈레 대통령은 중남미 여러 지도자 중에서도 단연 '튀는' 인물이다.

1981년생인 그는 2019년 대선에서 중도우파 성향 제3당의 후보로 출마해 30년간 이어진 양당 체제를 깨고 당선됐다.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즐겨 입는 젊은 포퓰리스트 부켈레는 만연한 갱단 범죄와 부패 척결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금세 국민을 사로잡았다.



밀레니얼 세대답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히 소통했고 취임 첫해 유엔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선 연단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켈레 대통령의 행보는 아슬아슬했다.

좌우 양당이 장악한 국회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그는 지난해 2월 무장 군경을 대동하고 국회에 들어가 의원들을 압박했다.

교도소 내 살인사건이 늘어나자 수감자들을 속옷만 입힌 채 강당에 빼곡히 포개 앉힌 모습의 사진을 공개해 국제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비인간적인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선을 넘나드는 행동으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부켈레 대통령의 지지율은 80% 안팎의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이에 힘입어 지난 2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국회까지 장악했다.



날개를 단 부켈레 대통령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국회를 통해 곧바로 대법관들을 파면하고 여권 성향의 판사들을 새로 임명했다.

엘살바도르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을 금지하고 있지만, 새로 구성된 대법원은 최근 대통령 연임이 가능하다고 판결해 2024년 대선에서 부켈레가 재선에 도전할 수 있게 했다. 대통령 임기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도 추진 중이다.

이를 두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부켈레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보다 더 걱정스러운 속도로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여러 차례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미국 정부는 20일 엘살바도르 대법관들을 부패 인사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부켈레 대통령의 거침없는 국정 운영의 대표적인 사례가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채택이다.



국민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지만 별다른 사회적 합의 절차도 없이 여당이 장악한 국회에서 속전속결로 결정됐다.

부켈레 대통령은 한때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비트코인 지지자를 뜻하는 '레이저 아이'(laser eye) 사진으로 바꾸기도 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엘살바도르 독립 200주년 기념일이던 지난 15일엔 반(反)정부 시위대가 '독재 타도', '비트코인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외침을 그는 "나는 독재자"라는 트위터 소개 글로 받아친 것이다.

인권단체 국제 앰네스티의 에리카 게바라-로사스는 로이터 통신에 부켈레 대통령이 "조롱성 언어"를 사용해 "그를 건설적으로 비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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