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정상 90분 통화, 인식차 보였지만 '마지노선' 논의 주목

입력 2021-09-10 18:09
수정 2021-09-10 18:13
미중정상 90분 통화, 인식차 보였지만 '마지노선' 논의 주목

바이든, 경쟁-협력 사안 분리 기조…시진핑 '핵심이익 존중' 촉구

최고위채널 가동하며 '하나의 중국·충돌방지 책임' 논의한 건 유의미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10일(미국시간 9일) 약 90분간 이뤄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통화에서 두 정상은 심각한 갈등 양상으로 치닫는 양국관계를 변화시킬 '돌파구'는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 관계의 현 상황을 보는 시각에서 양 정상은 이견을 드러내면서 아프가니스탄 대응, 기후변화, 북핵 등 양국의 협력이 필요한 현안과 관련한 의견 일치를 보거나 관계 개선의 동력을 만드는데까지는 나가지 못한 듯한 양상이다.

다만, 두 정상이 바이든 취임 후 첫 대면 회담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7개월 만에 소통 채널을 재가동하며 양국 관계의 '마지노선'에 대해 논의한 것은 의미가 없지 않아 보인다.

◇ 바이든 '경쟁과 협력 분리' 확인·시진핑 "미중 대항하면 모두가 피해"

우선 미중 '신냉전 시대'로까지 불리는 현재의 미중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양 정상은 차이를 보였다.

백악관은 이번 전화 회담 결과 발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분명히 밝혔듯이 이번 논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기 위해 미국이 계속 기울이고 있는 노력의 일부"라며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쟁'을 누차 거론한 것은 중국이 군사와 경제 면에서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변화 등 중요한 문제에 있어 중국과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더 많은 공동인식을 달성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경쟁할 부문에서 경쟁하고 협력할 부문에서 협력하고, 대항해야 할 때는 대항하겠다'는 미국의 대 (對)중국 기조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최근 아프간 철수 연설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데 국력을 더 쏟을 것임을 선언했던 것과 동일 선상이었다.

반면 시 주석은 미국이 중국 압박 정책을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중국의 핵심 이익을 미국이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통화에서 시 주석은 "미국이 채택한 대중(對中)정책으로 중미 관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며 "중미가 협력하면 양국과 세계가 이익을 볼 것이고, 대항하면 양국과 세계가 모두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시 주석은 "서로 핵심 관심사를 존중하고 이견을 잘 관리하는 기초"를 거론했는데, 이는 남중국해, 대만, 홍콩 등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사안에서 미국에 양보하지 않을 것이니 중국의 관련 입장을 용납하라는 요구로 풀이됐다.

이처럼 상황 인식에 차이를 드러낸 두 정상은 아프간 대응을 비롯한 현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측 발표에 구체성을 가진 합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중국 관영 중앙TV(CCTV)가 "솔직하고 심도 있었다"고 통화 분위기를 소개한 것도 양측이 주로 하고 싶은 말을 한 통화였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가에서 '솔직한 대화'라는 표현은 주로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을 때 쓰는 완곡 어법으로 통한다.

또 백악관은 두 정상이 "넓고 전략적 논의를 했다"고 했고, 익명의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증거는 푸딩 안에 있을 것"(the proof will be in the pudding)이라며 이번 통화는 양측간에 협력이 가능한지를 실제로 확인해 보는 데 목적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 군사충돌 방지 거론된 건 '마지노선' 확인 측면서 유의미

그럼에도 지난 2월 이후 7개월 만에 이뤄진 이번 통화는 양국이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인식에 입각해 최고위 대화 채널을 재가동했다는 점 자체에 의미가 있어 보인다.

또 양측 발표 내용 중 눈길이 가는 대목은 '충돌 방지'와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 유지' 관련 내용이다. 군사적 충돌과 '하나의 중국'은 모두 양국관계의 마지노선으로 불릴 수 있는 내용이다.

백악관은 이번 통화 결과를 발표하면서 "두 정상이 경쟁이 충돌(conflict)로 방향이 바뀌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한 두 국가의 책임감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양측은 최근까지도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에서 긴장 지수를 높여왔다.

가깝게는 지난 8일 미국 구축함 벤포드호가 스프래틀리(중국명 난사<南沙>·베트남명 쯔엉사·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의 미스치프 암초(중국명 메이지자오<美濟礁>) 인근 해역에 진입하자 중국 해·공군이 추적하며 퇴거 경고를 한 일이 있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른바 '항행의 자유'(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해역에 군함을 파견하는 것) 작전을 그만둘 가능성이나 중국이 '무시 작전'으로 나갈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양국이 자기 할 바를 하더라도, 우발적인 군사 충돌로 연결되지 않도록 정상급에서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 등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충돌 방지'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대목은 바이든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점이다. 이 내용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에는 있으나 미국 측 발표나 서방 매체의 보도에는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유지 방침을 언급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결국 '미국이 대만과 수교할 생각은 없으니, 중국도 대만을 공격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만해협 갈등의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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