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976명 살인' 9·11테러 설계자, 법정서 웃고 손 흔들어(종합)

입력 2021-09-08 13:20
수정 2021-09-08 17:15
'2천976명 살인' 9·11테러 설계자, 법정서 웃고 손 흔들어(종합)

18개월만에 관타나모 법정서 심리 재개

고문 문제 발목 잡혀 9년째 공판전 심리만

재판 지연 이유로 기밀·시스템 문제도



(워싱턴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김지연 기자 = 9·11테러 발생 20주년을 나흘 앞두고 법정에 선 테러범들이 웃음을 짓고 기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7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캠프 저스티스' 법정에 9·11테러의 설계자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한 용의자 5명이 출석했다.

회색빛이 감도는 붉은 턱수염을 한 모하메드와 공모자로 지목된 왈리드 빈 아타시, 람지 빈 알시브, 무스타파 알 아우사위, 아마르 알 발루치 등 4명이 함께했다.

미 공군 대령 매슈 맥콜 재판장을 앞에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 통역도 참석했다. 두꺼운 유리막 뒤 참관석에는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이 앉았다.



작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등 여러가지 이유로 중단된 9·11 테러에 대한 공판 전 심리가 18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다. 미국이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낸 직후 처음 열린 것이기도 하다.

이날 심리는 재판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점과 함께 테러범들의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모하메드는 심리 내내 웃는 모습을 보였고 중간 휴정 시간에 법정을 빠져나올 때는 기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였다고 폭스뉴스 등은 전했다.

이들은 재판장의 신원을 확인하는 질문에 "예"라고만 답했다.

모하메드는 2003년 파키스탄에 있는 자택에서 붙잡힌 이후 2006년 관타나모 수용소에 옮겨진 지 15년이 지났다.



그러나 재판은 정식 공판이 시작되지도 못한 채 심리만 무려 9년째 이어가는 등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피고인 5명은 2002∼2003년 체포된 뒤 재판을 둘러싼 논란 속에 2012년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재판하기로 했지만, 지금껏 40차례가 넘는 공판 전 심리만 이뤄졌다.

모하메드는 9·11 테러를 포함해 대니얼 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참수 사건,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 폭발사건 등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 중앙정보국(CIA)이 심문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를 재판에 활용할 것인지가 최대 쟁점이었다. 피고인들은 고문에 의한 증거를 사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들은 2천976명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데, 유죄가 인정되면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 상태라면 심리 절차에만 또 다른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매들린 모리스 듀크 법대 교수는 "재판이 아예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관타나모 문제와 관련해 미 국방부 군사위원회에 자문했던 케빈 파워스 보스턴대 국가 안보전문가는 재판 지연 이유로 검찰이나 변호인, 판사가 아닌 시스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을 위한 군사위원회 시스템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창설돼 모든 문제가 논쟁 대상으로 떠올랐고, 중간에 판사와 변호사도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날 심리를 진행한 맥콜 재판장은 이 사건을 맡은 8번째 재판장이다.

한편 공판 전 심리 절차는 이날부터 17일까지, 11월 1일부터 19일까지 예정돼있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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