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0년] ③ 지울 수 없는 충격…미국인의 삶이 변했다

입력 2021-09-08 05:00
[9·11 테러 20년] ③ 지울 수 없는 충격…미국인의 삶이 변했다

60% "미국인 삶 완전히 바뀌었다"…85%는 "세대에 큰 영향"

'인종의 용광로' 미국서 싹튼 반이민 정서…트럼프가 불붙여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2001년 9월 11일 오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주의 한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하고 있었다. 2학년 학생 16명이 대통령과 같이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순조롭게 수업이 진행되던 도중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이 갑자기 대통령 곁으로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 두 번째 여객기가 충돌했다는 소식이었다.

부시와 학생 16명의 인생이 바뀌어버린 순간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침착을 유지하려 애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서둘러 워싱턴DC로 복귀했다.

CNN방송은 6일 특집 방송을 통해 9·11 테러가 이제는 27세가 된 이들 학생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짚었다. 이 테러가 미국 전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학생 중 연락이 닿은 6명과 당시 수업을 이끌던 교사 샌드라 대니얼스가 모였다. 이들 대부분은 9·11 테러가 일어난 순간에 대통령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에 대해 지금도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니얼스는 "(9·11은) 내 삶의 일부가 됐다. 내가 어디에 있든 9·11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털어놨다.

한 학생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시에 있는 대학을 갔다. 뉴욕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했다.



9·11 테러로 삶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이들만 가진 것은 아니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가 서포크대와 함께 지난달 1천 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가 '9·11로 미국인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답은 38%였다.

9·11 이듬해인 2002년에는 삶이 변했다는 응답이 54%, 아니라는 답이 45%로 9%포인트 격차였는데, 2011년엔 17%포인트로, 2021년엔 22%포인트까지 벌어진 것이다.

2001년 15세 이상이었던 응답자 거의 전부가 그날의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 강력했다는 뜻으로, 85%는 9·11이 그들의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고 세 명 중 두 명은 개인의 삶에도 큰 영향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 20년간 미국에 일어난 최악의 사건으로 9·11 테러가 꼽힌 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35%의 응답으로 1위였고, 9·11 테러가 27%로 2위였다.

설문조사 항목에 9·11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몰고 왔는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인 열 명 중 여섯 명이 9·11 테러로 삶이 영원히 변했다고 느낀다는 자체가 당시 충격과 공포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대규모 해군 비행장이 있는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매슈 에르난데스(34)는 USA투데이에 "내가 학교에서 알던 많은 사람이 엄청나게 애국적으로 됐다. 같은 학년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군과 관련된 일에 복무하는 것 같고 이는 상당 부분 9·11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9·11 이후 가장 직접적으로 겪게 된 변화는 공항에서다. 액체나 라이터를 들고도 항공기를 탈 수 있던 시절은 지나가 버렸고 길게 늘어선 줄과 엄격한 수속이 일상이 됐다.

추가 테러 위험을 막고자 당국이 빗장을 거는 와중에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던 미국에서 반이민 정서도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테러 이듬해에 국토안보부가 신설되면서 위험인물 유입 단속에 나섰다.

반이민 정서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남쪽 국경에 장벽까지 쌓아 올리는 강경한 이민정책을 지지층 유인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테러와 연관 지어 의심하는 시선이 강해지면서 테러와는 상관없는 미국 내 무슬림의 삶까지 팍팍해졌다. 백인 남성의 표심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차별적 언동을 서슴지 않던 트럼프 시절에 이런 현상 역시 특히 심해졌다.

정보당국의 감시 활동도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한껏 확대됐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사태는 정보당국이 평범한 미국인들 일상까지 그물망을 폭넓게 드리운 실태의 단면을 보여줬다.

9·11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돼 20년을 끌었으나 미국에서 정부가 테러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USA투데이 여론조사에서 9·11 이듬해에는 80%가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지만 10년 뒤에는 75%로 떨어졌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51%만 신뢰가 있다고 했고 47%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 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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