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르포] 바나나 심기? 전기버스 운영?…냉담한 미얀마 민심
흘라잉 최고사령관 지침에 "군부, 20년전 판박이" "현실 괴리" 지적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미얀마 국가행정평의회(SAC)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최근 각종 회의석상에서 언급했다는 '지침'을 놓고 시민들 사이에 냉담한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봐왔던 '헛발질'의 재탕이거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연방 전력에너지부가 각 지부에 보낸 공문에는 난데없이 '바나나 심기'가 등장했다고 한다.
에너지부는 공문에서 6월에 언급됐다는 '흘라잉 사령관 지시'를 거론하며 "값싸고 비타민이 많아서 국민 영양 증진에 좋은 바나나를 심을 땅의 넓이와 신청할 바나나 묘목 숫자를 보고하라"고 적었다.
미얀마 전역에 '바나나 심기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들은 한 미얀마 지인은 기자에게 "2006년 딴 쉐 장군이 이끌던 군정이 짯쑤(추출한 기름을 가공해 바이오디젤로 사용하는 식물 자트로파를 가리키는 이름)를 전국적으로 심게 했던 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당시 짯쑤가 바이오 디젤을 생산한다고 해서 군정은 학교나 군대를 비롯해 모든 공공기관 유휴 부지에 그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또 동네나 학교, 학년별로 할당량을 주어 관리하게도 했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동네마다 있던 축구장도 죄다 갈아엎어 짯쑤를 심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점차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불도저처럼 몰아붙였던 짯쑤 심기는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이 지인은 "곳곳마다 심었던 짯쑤는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도 힘들다"며 "약 20년이 지나도 군부가 하는 일은 똑같다"고 혀를 찼다.
흘라잉 사령관은 지난달 10일에는 SAC 회의에서 "따닌따리주가 미얀마의 기름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 따닌따리주는 팜(Palm) 나무가 많이 나오는 지역이다.
식용유를 많이 사용하는 미얀마의 식생활 습관상 필요한 식용유를 자급자족하자는 의도다.
그러나 팜유는 건강에 좋지 않은 기름으로 분류돼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 현실인데, 갑자기 팜유 사용을 추진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기류가 다수다.
딴 쉐 군정 때도 팜나무를 많이 심도록 강요해 따닌따리의 원시 밀림만 훼손되고 성과는 별다른 게 없었는데도, 군부가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냐는 게 시민들의 속내로 보인다.
같은 달 17일 네피도 개발위원회 회의에서 한 발언도 입길에 올랐다.
흘라잉 사령관은 당시 회의에서 "네피도에 전기버스와 지하철이 다닐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라"고 언급했는데, 특히 전기버스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네피도는 인구 2천만 명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획도시"라며 "앞으로 교통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조성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피도는 과거 군부 독재 정권 당시 도로 등 기반시설이 과잉 투자된 것으로 유명하다. 거주하는 인구도 9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데도 지하철이나 전기버스 운영 발언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오는 상황에 민심은 냉담하게 반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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