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인정하고 손잡아야 하나…미국의 딜레마
IS 제거에 공통의 이해관계…탈레반, 경제난 해소에 미국 도움 절실
알카에다 비호, 미국 상대 전쟁한 탈레반 인정시 강한 반대 직면할듯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의 정부로 인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국이 아프간 철군을 완료한 뒤 탈레반 정권 수립이 본격화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20년간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은 전쟁에서의 주적(主敵)을 이제부터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력할 것인지를 놓고 복잡한 셈을 해야 하는 처지다.
뉴욕타임스(NYT)는 31일(현지시간) 분석 기사에서 미국과 탈레반이 서로를 완전히 용인할 수도 없고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관계를 이어가면서 협력과 갈등, 타협과 경쟁 사이에서 수년 또는 수십 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아프간을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이자 미국의 최대의 적수인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이 경쟁할 수 있는 지정학적 패권 투쟁의 장, 그리고 탈레반의 통치와 경제 붕괴에 따른 여파가 국경을 넘어 확산할 수 있는 지역으로 보고 있다.
당장 아프간 전쟁의 실패에 대한 비난과 탈레반의 재집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직면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단시간 내에 탈레반을 용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프간 일대가 이슬람 극단주의와 국제 테러리즘의 최대 온상이 될 수도 있는 위험 앞에서 미국은 아프간을 이미 실질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한 탈레반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당장 미군은 철군 막바지에 카불 공항 경비와 미군의 안전 담보를 위해 탈레반의 손을 일부 빌린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아프간 내에 군대와 동맹을 보유하지 않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암약하는 이슬람국가(IS) 세력을 타격하고 억제하려면 정보력과 미국에 우호적인 군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역할을 담당할 세력은 현재로서는 재래식 무기와 대규모 병력, 통치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탈레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적을 적으로 제압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는 미국이 그동안 적대 세력을 축출하고 패권을 강화하는 데 드물지 않게 사용해온 전략이다.
미국으로선 중국과 이란 등 적성국들이 탈레반과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거슬리는 문제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이란과 중국은 탈레반이 테러리즘을 억제한다는 약속을 하기만 하면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아울러 두 나라 모두 국경을 맞댄 아프간의 경제 붕괴와 전쟁 재발을 극도로 경계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코앞에서 미국이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우려해 탈레반을 포용하려는 기류다. 이는 미국이 탈레반을 계속 외면할 수만은 없는 또다른 이유가 된다.
탈레반으로서도 미국의 협력이 크게 필요한 상황이다. 먼저 기근과 경제난 때문이다.
아프간은 수입의존도가 큰 내륙국가인데다 아프간 정부 소유의 94억달러(약 10조8천억원)가 외국에서 동결돼 극심한 경제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제원조도 끊긴 상황에서 외환보유고 동결을 해제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에는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탈레반은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를 아프간 내에서 제압하는 데에도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하는 처지다.
특히 탈레반을 적으로 여기며 암약하는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을 토벌하려면 미국의 공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제 미국은 탈레반의 IS 토벌전을 막후에서 지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탈레반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아직 선뜻 택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비호한 전력에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와 손을 잡고 막대한 자금을 다시 쏟아붓는다는 것은 당분간은 국내의 강한 반대 여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NYT는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공식·비공식 승인하게 되면 탈레반이 이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통치하는 '백지수표'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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