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서 굴욕당한 美…웃지만 웃는 게 아닌 중·러

입력 2021-09-01 03:02
수정 2021-09-01 12:25
아프간서 굴욕당한 美…웃지만 웃는 게 아닌 중·러

WSJ "美, 향후 중국 문제에 집중…중·러 입장도 복잡해져"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굴욕을 당했지만, 미국의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반사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과 미국의 철수가 향후 국제사회 역학관계에 미칠 변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일단 미국은 지금까지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빼면서 중국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카네기 모스크바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에프 선임펠로는 "철군 과정이 재앙에 가까웠지만,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 정부는 향후 미국이 전략적으로 동아시아와 중국 문제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불편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전문가들도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 대한 군사 자원 투입을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중앙 아시아 지역의 불안정성 증가가 야기할 중국 안보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다.

저장(浙江) 외국어대학의 국제관계학자 마샤오린(馬曉霖)은 "중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대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중국은 당장 위구르족 분리주의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과 그 후신인 투르키스탄 이슬람당에 대한 대응을 고민해야 할 입장이다.

최근 유엔은 아프가니스탄에 체류하는 위구르족 무장세력의 수를 5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 등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의 전투력은 단순히 병력 규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탈레반이 전광석화처럼 카불까지 장악한 원인 중 하나는 위구르족 무장세력을 앞세웠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될 정도다.

이와 관련, 중국은 탈레반과의 협력을 통해 위구르족 무장세력을 통제하겠다는 계획이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난 것도 이 같은 목적에서였다.

중국은 탈레반에 위구르족 무장세력과의 절연을 요구했고, 탈레반도 중국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그러나 러시아 싱크탱크인 국제문제위원회(RIAC)의 안드레이 코르투노프 위원장은 "지금 탈레반은 신장이나 중앙아시아에서 테러를 벌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은 말뿐"이라고 지적했다.

탈레반의 약속과는 달리 테러 세력이 준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WSJ은 중국군은 국경 바깥에서 작전을 펼친 경험이 적고, 경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는데도 신중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철군한 미국을 향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경제지원을 하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WSJ은 미국이 철군 과정에서 동맹국들과 일부 마찰을 빚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미국 입장에선 철군 과정에서 증폭된 국제사회의 불안감과 마찰을 진정시키는 것이 과제다. 미국과 밀접한 영국조차도 미국의 성급한 철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가부에프 카네기 모스크바센터 선임펠로는 카불 철군 이후 미국 내 정쟁이 가열되고,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계에 마찰이 발생하는 것이 러시아 정부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kom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