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징계는 취소하라 했지만 금융사 '탐욕'·당국 결탁 질타
재판부, 내부통제 중요성 강조…우리은행의 형식적 상품심사도 지적
"판결 취지, 항소 여부 등 후속조처에 영향 예상"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손태승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에 승소 판결한 1심 재판부는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취소하라고 주문하면서도 우리은행의 허울뿐인 내부통제제도를 신랄하게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경영진의 브레이크 없는 '탐욕'을 매섭게 질타한 것으로 판결문을 통해 확인됐다.
이런 재판부의 판단은 금융감독원의 항소 결정 등 후속 대응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금융규제의 완화는 내부통제의 강화를 통한 '규제의 민영화' 또는 '규제의 내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는 외부적 규제의 완화 정도와 비례해서 강화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국내 금융기관에 내부통제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고 진단하면서 "금융기관이 예금자 등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도외시한 채 그 실적만을 좇거나 경영진이 그 욕망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그 '탐욕'에 제동을 걸어 줄 수 있는 실효적인 자율적 내부통제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탐욕'에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지 못한 원인과 관련, 재판부는 "금융기관 규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의 이른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 문제가 그 퇴임 후 취업 문제와 연관되어 사회적 문제로 꾸준히 지적됐다"고 말해, 퇴직 금융관료, 속칭 '모피아'를 통한 결탁 관행을 꼬집었다. 규제 포획이란 규제당국이 규제 대상에게 포섭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재판부는 "(내부통제 미작동에도) 제대로 된 규제가 적시에 실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였거나, 사전에 이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형태의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져 왔는지에 대하여는 회의적인 시각에서 문제 제기가 계속 있었다"며 "이러한 비판과 궤를 같이하여, 현실에서도 실제로 불특정 다수의 금융소비자가 대규모로 피해를 보고 그에 따라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해할 우려까지 생기는 금융사고 역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금융사지배구조법령이 유독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가 '실효성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이라는 문언을 명확하게 추가한 그 규범적 함의를 결코 가벼이 볼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상품 선정절차에서 투표 결과 조작과 투표지 위조, 형식적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등으로 내부통제 규범과 기준을 위반하고 형해화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 손태승은 내부통제기준 작성업무에 대하여
도 감독자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 대표이사가 내부통제기준 운영자의 직속 감독자가 아니므로 징계 대상이 아니라는 원고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금융회사 내부통제제도의 중요성과 대표이사의 책임성, 우리은행의 부적절한 상품 선정절차를 인정하면서도 손 회장 징계를 취소하라고 주문한 것은 법조문이 징계에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피고 주장과 같이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실패로 인하여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판매라는 금융사고와 그로 인한 대량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하여 제재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제재의 필요성만으로는 법적 근거 없이, 혹은 제재처분의 근거법령을 문언의 범위를 벗어나 확장 해석하여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비록 패소했지만 재판부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의 중요성과 대표이사 중징계 재량권 등을 인정한 것은 금감원의 제재에 부분적으로는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항소 여부 등 후속 조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7일 금감원은 판결문을 세밀하게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판결문을 받지 못했다"며 "이번 주에 판결문을 수령한다면 추석 전까지 항소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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