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주택 20만여채 몰수해 공유화 주민투표…지지 우세
월세 급등세 완화 위해 주택 20만채 몰수…시민행동 주민투표 발의
베를린 월세 최근 5년간 42% 급등…11조∼52조원 손해배상 필요 추산
(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독일의 수도 베를린시가 월세 급등에 제동을 걸기 위해 대형 부동산회사의 보유주택 20만여채를 몰수해 공유화하는 방안을 놓고 주민투표를 한다.
베를린시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공유화에 대한 지지가 반대보다 우세한 상황이다.
30일(현지시간) 독일 rbb방송 등에 따르면 독일은 연방하원과 베를린시 총선거가 있는 내달 9월 26일 주택 3천채 이상을 보유한 민간 부동산회사의 보유주택을 몰수해 공유화하는 방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한다.
베를린의 임대주택 150만채 중 10여 개 부동산회사가 보유 중인 20만채가 몰수 대상이다.
베를린에서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시민행동이 주민투표를 발의한 배경에는 독일 헌법 15조가 있다. 도이체 보넨은 독일 증시에 상장된 부동산회사로 주택 15만5천여채를 보유하고 있다. 보유주택 중 11만채는 베를린에 있다.
독일 헌법 15조는 "토지와 천연자원, 생산수단은 사회화(공유화)를 위한 손해배상의 방식과 규모를 정하는 법률을 통해 공유재산이나 공유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실제로 적용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택을 이런 방식으로 공유화하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몰수된 주택은 공공기관에서 모아 관리한다는 게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시민행동의 계획이다. 이 기관에는 베를린시도 관여하지만, 임차인 조직 대표도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게 시민행동의 주장이다. 이들 주택의 재사유화는 규약을 통해 원천 봉쇄된다.
시민행동이 주택 몰수에 나서게 된 본질적 이유는 베를린의 월세 급등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더 많은 주택을 시가 보유할수록, 더 강하게 상승세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기적으로는 평균적인 월세 수준에 영향을 미쳐 베를린 시내 다른 주택의 월세 수준도 조절될 것이라는 게 시민행동의 기대다.
베를린 시내 주택의 월세는 2016년 상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최근 5년간 42% 급등해, 독일 전체에서 가장 가파르게 치솟았다.
보유주택 몰수에 대한 대가로 부동산회사들에 대한 손해배상 규모는 시민행동이 80억 유로(약 11조원), 베를린시는 379억 유로(약 52조원)로 각각 추산했다.
주민투표에는 베를린시 유권자 247만명이 참여한다. 투표자 중 과반이 찬성하면 주민투표는 가결된다. 여기에는 61만8천표가 필요하다.
현재 베를린 시정부를 운영 중인 정당 상징색에 따라 적(사회민주당·SPD)·적(좌파당)·녹(녹색당) 연정 참여 정당 중 주택 몰수를 위한 시민행동을 지지하는 정당은 좌파당 뿐이다.
사민당의 베를린 시장 후보는 반대를 명확히 했고, 녹색당은 공약에 "우리가 주택 시유화를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애매한 입장을 내비쳤다.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나 자유민주당(FDP),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rbb방송과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인 '베를린 트렌드'에 따르면 베를린시 유권자 중 47%는 부동산회사로부터 주택 몰수에 대해 '좋다'고 응답했다. '나쁘다'고 응답한 이들은 43%를 기록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안에 대한 투표가 아니고, 베를린시에 부동산회사로부터 주택 몰수를 촉구하는 형태기 때문에 주민투표가 가결된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이행 의무는 없다. 주민투표 결과를 어떻게 이행할지에 대해서는 새로 구성되는 시의회가 연정 협상 등을 통해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yuls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