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국가 자처' 탈레반, 마약원료 양귀비 재배 금지"

입력 2021-08-29 09:19
수정 2021-08-29 14:11
"'정상국가 자처' 탈레반, 마약원료 양귀비 재배 금지"

WSJ 보도…국제사회 인정 노린 조처 분석

세계 아편 80% 점유…양귀비값 벌써 폭등

아프간 경제 10% 포기…내부불만에 정치역풍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탈레반이 아편 등 마약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사회 인정을 받는 정상국가로 나아가려는 조처 중 하나로 분석된다.

WSJ은 현지 농부들을 인용해 탈레반이 주요 양귀비 산지인 칸다하르주(州) 마을을 돌며 더는 양귀비를 재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향후 생산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양귀비 값이 크게 뛰었다.

WSJ에 따르면 칸다하르·우르즈간·헬만드주에선 가공하지 않은 양귀비 1㎏의 가격이 70달러(약 8만원)에서 200달러(약 23만원)로 3배 올랐고 북부 마자르-이-샤리프에선 두 배로 올랐다.

양귀비는 아프간의 '특산물'이다.

아프간은 세계 아편 공급의 80%가량을 담당한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4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아프간 양귀비 재배면적은 작년 22만4천헥타르(약 2천240㎢)였다.

서울(605㎢)의 4배 가까운 땅에 양귀비를 재배하는 셈이다.

양귀비 재배면적은 재작년(16만3천헥타르)보다는 38%,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듬해인 2002년(7만4천헥타르)에 견주면 202% 늘었다.

아프간 전체 양귀비 생산량은 지난해 약 6천300t으로 추산됐다.

경제기반이 약한 아프간에서 양귀비는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USODC에 따르면 양귀비 재배면적이 크게 줄었던 재작년에도 아프간 아편시장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7~12%에 해당하는 12억~21억달러(약 1조4천억~약 2조4천억원)에 달했다.

탈레반도 양귀비를 자금줄로 삼아왔다.

농부들은 양귀비 판매액의 약 6%를 '세금'으로 내는데 대부분 탈레반에 납부했다고 UNODC는 지적했다.

'양귀비 판매세' 총액은 재작년 기준 1천450만달러(약 169억원)로 추산됐다.

UDODC는 양귀비로 아편을 만들어 밀거래하는 데도 각각 세금이 부과되며 이를 통해 탈레반 등 정부 밖으로 약 6천100만~1억1천300만달러(약 713억~1천322억원)가 흘러 들어갔다고도 추정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들은 탈레반 연간수익 규모를 3억~16억달러(약 3천500억~1조8천700억원), 수익의 60%는 마약거래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



탈레반은 2000년에도 국제사회 인정을 노리며 양귀비 재배를 금지한 적 있다.

이전까지는 마약을 하는 것만 막고 제조나 거래는 손대지 않았다.

당시 조처로 양귀비 생산량이 9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와 동시에 탈레반 지지기반에도 큰 타격이 가해졌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반다 펠밥-브라운 연구원은 "탈레반은 양귀비 재배 금지로 어마어마한 정치적 비용을 치렀다"라면서 "2001년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탈레반 편에 선 사람이 없던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양귀비 재배 금지"라고 말했다.

미국도 양귀비 재배를 막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아편을 정제해 만드는 헤로인이 아프간에서 세계로 공급되지 않도록 만들고자 20년간 90억달러(약 10조5천억원)를 쏟아부었으나 실패했다.

미국은 사프란과 석류, 피스타치오 등을 대체 작물로 제시했으나 양귀비보다 수요도 적고 수익성도 낮았다.

현재 탈레반도 양귀비 대체 작물로 사프란을 권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의 이번 양귀비 재배 금지 조처도 탈레반에 정치적 타격을 가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중앙은행 국외자산이 동결되고 국외에서 들어오는 원조가 끊기면서 경제난과 식량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내부 불만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아프간에 탈레반에 군사적으로 맞설 세력이 없다는 점은 양귀비 재배 금지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만약 탈레반이 양귀비 재배를 막는 데 성공하면 아프간 헤로인 주요시장인 러시아와 이란, 유럽 등에서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칸다하르주 한 농부는 WSJ와 전화인터뷰에서 "탈레반이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라면서 "그들이 정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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