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의 아프간 난민들, 밤잠 설쳐…"가족·친구 목숨이 위험"

입력 2021-08-25 15:19
인니의 아프간 난민들, 밤잠 설쳐…"가족·친구 목숨이 위험"

1만2천여명 미국·호주·캐나다 이주 희망…UNHCR 앞서 시위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 난민촌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최근 들려오는 탈레반의 재집권 소식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서부 칼리데레스 난민촌 공동 대표 하산 라마잔(43)은 25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전화 인터뷰에서 "탈레반의 재집권 소식에 이곳 난민들은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 보고 매우 불안한 상태"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유입된 아프간 난민은 1만2천명에 이른다.

7천600여명은 유엔난민기구가 인도네시아 10여곳에 설치한 캠프에 수용됐고, 3천500명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정한 보고르 뿐짝 지역에, 나머지는 자카르타 안팎에 몇백 명씩 모여 살고 있다.



연합뉴스는 1년 전 인도네시아 아프간 난민들의 '엄마, 아빠'로 불리는 권용준 선교사와 아내 김순덕씨의 소개로 칼리데레스 난민촌을 취재해 세상에 알렸다.

소식을 접한 한인사회가 라면과 아이스크림, 현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산은 "아프간 현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매일 큰 스트레스와 걱정 속에 살아간다"며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탈레반은 집권 후 일반 사면령을 발표했지만, 그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며 "탈레반은 이미 지난 정부의 주지사나 외국인에 협조한 조력자를 찾아내려고 집마다 찾아다니고 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하산은 "무장한 저항 세력도 집결하고 있어서, 탈레반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만약, 탈레반에 맞서는 저항 세력이 커지면 아프간은 다시 내전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작년 통계에 따르면 아프간 난민은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145만명)과 이란(78만명)에 가장 많고, 독일(18만명), 터키(13만명), 호주(4만6천명), 프랑스(4만5천명), 그리스(4만1천명) 순이다.

아프간 난민들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으로 이송돼 정착하길 간절히 희망한다.

인도네시아에 체류 중인 아프간 난민들도 유엔난민기구의 추천으로 이들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하산은 "아프간을 떠날 당시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 따라 유럽, 인도·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까지 목적지가 달라진 것"이라며 "선진국으로 가서 가족을 데려오는 게 목표였는데, 탈레반 재집권으로 모든 게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에서 2∼3년 살면 제3국으로 떠날 수 있었지만, 각국이 난민수용을 제한하면서 최근에는 통상 5년이 걸리고 10년 이상 기다리는 난민도 수두룩했다.

게다가 탈레반 재집권으로 새로운 난민이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 쏟아지면서, 인도네시아에 있는 이들에게 선진국으로 갈 기회는 더 사라진 분위기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난민의 노동을 엄격히 금지하기에, 난민들은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별다른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

칼리데레스 난민촌의 경우 빈 건물에 가족 단위로 텐트를 치고 산다.

아프간에서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져도 일할 방법이 없고, 코로나 사태로 지원의 손길이 더 끊겼다.

인도네시아의 대다수 아프간 난민이 소수 시아파 무슬림인 하자라족인 반면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샤피이 학파로, 수니파 쪽에 가깝기에 아프간 난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권용준 선교사는 특파원과 통화에서 "쌀과 밀가루, 식용류 등 생필품이 가장 필요하다. 화장실 오물을 퍼낼 현금도 늘 부족하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권 선교사 부부는 백신접종 등을 위해 두 달 전 일시 귀국했으나, 내달 3일 자카르타로 돌아올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의 아프간 난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전날 자카르타의 유엔난민기구(UNHCR) 앞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가능한 한 많은 난민을 신속히 제3국으로 보내달라"며 "너무너무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다리고만 있다"고 호소했다.

또, 일부는 "탈레반 재집권으로 제3국 이주에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게 도와달라"고 현실적 목소리도 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이들이 코로나 사태에 따른 집회 금지령을 위반했다며,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