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두얼굴…1996년에도 '평화' 부르짖다 '피의 숙청'

입력 2021-08-23 11:56
수정 2021-08-23 13:19
탈레반 두얼굴…1996년에도 '평화' 부르짖다 '피의 숙청'

WP "현상황은 첫 집권 1996년 9월과 판박이"

곳곳에 벌써 유혈…20년 전 잔혹통치 답습 공포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탈레반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공언하지만 언행 불일치 전력을 볼 때 심히 의심스럽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간에서 처음으로 정권을 탈취했던 당시에도 초반에 평화를 약속하다가 순식간에 돌변했는데, 미군 철수로 재집권한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게 WP의 진단이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수도 카불이 함락된 지 이틀 만인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우리는 20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면서 "아프간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아프간을 통치하다가 2001년 미국 침공으로 실권했으며, 20년 만인 올해 5월 미군 철수를 틈타 재장악에 나서 지난 15일 카불까지 접수했다.

잔혹하게 주민을 억압하는 통치로 악명 높았던 탈레반은 이번엔 "복수는 없다"며 사면령을 발표하는 등 평화를 약속했으나 이는 며칠 만에 공염불이 됐다.

탈레반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고, 카불을 떠나려는 공항 인파를 통제하면서 사상자가 속출 중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지방경찰청장이 기관총으로 처형 당하는 장면이 떠다니는 등 피비린내 나는 보복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1996년 당시와 판박이라고 WP는 짚었다.



WP는 1996년 9월 27일 탈레반이 카불을 접수했던 그날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탈레반은 15일에 걸쳐 아프간 전역을 함락시키다 수도까지 점령했고, 당시에도 정부군 저항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때 탈레반은 미국에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조직이었으며, 지정학적으로도 아프간은 미국 정부의 감시망에서 비껴나 있었다.

탈레반은 즉시 "현대 세계에 반대되지 않을 이슬람 정부를 세우고자 한다"고 공표하고 확성기로 평화 약속을 외치고 다니기도 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내전 등으로 지쳐있던 아프간 주민 중 일부에게는 탈레반은 "이슬람 수호자이자 아프간 구원자"로 비치기도 했다.

탈레반 창설자인 무하마드 오마르는 당시 카불 주민들에게 안전을 약속했고, 사령관도 "복수하지 않겠다. 개인적 원한은 없다"며 항복한 정부군과 관료들에게 전원 사면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곧 '피의 숙청'이 시작됐다.

당시 전직 대통령이자 친소련 정치인이던 모하마드 나지불라는 탈레반이 카불을 접수한 다음날인 9월 28일 처형당해 길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참혹하게 훼손된 시신이 된 채 매달렸다.

또 탈레반 지도부는 절도범의 손발을 절단하겠다는 형법을 발표했는데, 며칠 만에 실제로 시행됐고, 여성들은 눈만 내놓은 채 온몸을 가리고 거리를 다니다가도 탈레반 조직원들에게 이유 없이 집단 구타당하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보도한 WP 기사에서는 "카불은 여성들에게 사실상 감옥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1996년 10월 1일 탈레반 지도부는 이슬람 방식으로 여성과 소녀의 취업과 고용이 허가될 때까지만 통제를 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렇게 되기까지는 2001년 미국이 탈레반 축출한 이후에나 가능했다고 WP는 지적했다.

newglas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