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중국의 입' 화춘잉이 읽은 중국의 '도전장'

입력 2021-08-23 16:46
수정 2021-08-23 16:52
[특파원 시선] '중국의 입' 화춘잉이 읽은 중국의 '도전장'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3시(현지시간)에 열리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은 외교 현안에 대한 중국 정부 입장을 밝히고 내외신의 궁금증에 답하는 일반적 브리핑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신냉전'이라 불릴 만큼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전개되고 있는 미국과의 경쟁 속에서 중국이 미국을 비판하고 자국의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말의 전쟁터' 분위기가 종종 연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 매체 기자가 질문을 하면 미리 준비한 듯한 대변인의 긴 답변이 '약속대련'처럼 나오는 것이 일상인데, 지난 20일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의 답변은 최근 국제정세를 보는 중국의 시각을 포괄적으로 드러낸 것 같아 특히 눈길을 끌었다.

중국 기자가 '아프간에서 미국이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을 강요하다 실패했다'는 취지의 미국 외교잡지 기고문 내용을 거론하며 중국 정부의 입장을 물은데 대한 답변이었다.

화 대변인 발언 중 주요 부분을 발췌해서 소개하면 이렇다.

『"아프간 사태의 중대한 변화는 외부에서 강압해 이식한 민주(민주주의)가 오래가지 못하고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민주'에는 고정된 모델이 없다. (중략) 민주는 '코카콜라'여서는 안 된다. 미국이 생산한 재료로 전 세계가 같은 맛을 즐기는 그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많은 중국인들이 베이빙양치수이(北?洋汽水·중국산 탄산음료 이름)를 좋아하는 것을 안다."

"대체 '민주'란 무엇인가. 민주를 누가 정의해야 하는가. (중략) 우리가 보기에 민주를 평가하는 기준 중 중요한 하나는 인민의 기대와 수요, 요구에 부합하느냐다.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중국은 인민 민주, 미국은 금전(金錢) 민주이고, 중국 인민은 실질 민주, 미국은 형식 민주를 향유하며, 중국은 전(全) 과정의 민주, 미국은 4년마다 한 번 있는 '투표 민주'를 누린다."

"미국이 1인 1표를 민주주의의 최고 형식으로 여기는 것은 매우 편협하다. (중략) 중국 공산당이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 정치인들은 표를 얻을 수 있느냐를 최우선시하며 4년, 2년 뒤 표심을 주시하고 있다.미국에서 천만명 이상이 코로나19에 맞서 고전할 때 미국 정당은 국민 생명·건강보다 정치적 사익을 우선시하는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아프간을 미국의 실패 사례로 거론하는 것으로 운을 뗀 화 대변인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으로 주장을 이어가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응 문제를 거론하며 공산당 일당독재에 입각한 중국 체제(소위 인민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취지의 결론을 설파했다.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에서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뜻)로 전환한 극적 계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다고 많은 외교가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여기에다 미국의 코로나19 대확산과 이번 아프간 철수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 '체제 우월성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화 대변인이 '인민 민주주의'라고 표현했지만 중국이 투표에 의한 정권교체의 기회가 없고, 언론의 성역없는 감시를 받지 않는 '일당 독재국가'이자 '권위주의 국가'라는 점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중국 외부에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코로나19 대응과 아프간 문제 등에서 실패를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화 대변인의 자신감 충만한 발언이 중국 밖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화 대변인의 발언이 자유 민주주의 진영에 도전장과 동시에 숙제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표로 선출된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위정자들이 정파의 이익을 넘어 실질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중국은 더욱 확신에 찬 어조로 도전장을 던지고 동조자를 모으려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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