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도착하는데…유럽 '2015년 악몽'에 속속 빗장
오스트리아·그리스는 이미 수용 반대 의사…독일 등도 난색
대량 난민 유입시 극우정당 재부상 우려…아프간 인근국 지원 추진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지난 18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실은 첫 비행기가 도착했다.
고향땅 아프간이 탈레반에 넘어간 가운데, 세 가족과 한 부녀를 포함한 이들 난민은 이후 버스를 타고 함부르크로 이동했다.
함부르크에는 약 200명의 난민을 위한 임시 쉼터가 마련돼 있다.
독일 내 다른 여러 도시 역시 난민들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 정가에서는 이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2015년(난민 위기)의 재현은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다음 달 예정된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아르민 라셰트 독일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 총리 후보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지사도 최근 이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 EU "아프간인, 유럽으로의 대규모 이동 없어야"
18일(현지시간)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내 주요국들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탈취로 인한 난민 대량 유입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등의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가는데 주요 경로 중 하나가 됐던 오스트리아는 이번에는 절대 아프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아프간 인근 지역에 난민 센터를 지어야 한다며 "아프간인들이 오스트리아에 올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역시 또다시 난민의 관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연합(EU) 외교 수장인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각국 장관들과 회동 후 "회원국들은 유럽으로의 대규모 이동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원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 미국 따라 아프간전 참전…"도덕적 책임감 가져야" 지적도
반면 아프간에 대한 유럽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을 따라 아프간 침공에 함께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도덕적 의무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17일 TV에 나와 "아프간에서 이탈리아를 도왔던 이들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자유와 시민권, 인권 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노출했던 이들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서방국가와 함께 일했거나 지금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들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진보와 자유를 구축하기 위해 일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쓰라린 상황에 처했다"면서 "지금은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난민 대량 유입시 유럽 극우정당 부활 발판될 수도
아프간 난민 위기가 본격화하면 유럽 내 극우 세력이 다시 부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앞서 2015년 시리아와 이라크 등으로부터 130만명이 넘는 난민이 몰려들면서 유럽 각국에서는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극우와 포퓰리즘 정당이 정치권에서 부상했다.
이후 난민 숫자가 줄어들면서 반이민 정당에 대한 지지 역시 하락했지만, 아프간 사태로 인해 이들이 다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난민 위기가 다시 정치권의 어젠다가 될 경우 선거에서 극우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AfD는 아프간 난민들이 도착하자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 역시 트위터에 "잠재적 테러범들을 포함해 수천명의 남성에게 문을 여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등이 다시 힘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일단 아프간 난민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프간 붕괴에 대한 영향을 유럽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가 아프간에서의 난민 대량유입에 대비한 강력한 대응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난민이 유럽으로 오지 않고 터키,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 머물 수 있도록 협력과 지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를 위해 EU 외무장관들은 아프간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라도 실용적인 차원에서 탈레반과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인도주의적·잠재적 이주 참사를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탈레반과의 대화를 위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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