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ICT 발전에도 생산성 낮아져…무형자산 취약 때문"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높은 ICT(정보통신기술) 산업과 인프라 수준에도 불구, 오히려 우리나라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역설적' 현상은 무형자산이 아직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디지털 혁신을 통해 생산성 개선이 이뤄지려면 기업의 가치 창출 원천이 기계·설비 등 유형 자산에서 소프트웨어·데이터베이스·연구개발(R&D) 등 무형자산으로 이동해야하는데, 한국에서는 그 과정이 더디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18일 '디지털 혁신과 우리나라의 생산성 역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ICT 산업 발전 정도, ICT인프라, 혁신역량 등 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초여건이 양호하지만, 경제성장과 생산성은 둔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의 혁신지수 순위는 2012년 21위에서 지난해 10위로 11계단이나 뛰었지만, 고소득국가(OECD회원국 중 2018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국가) 대비 상대 소득수준은 50%대, 상대 노동생산성은 70%대에서 상승 폭이 오히려 떨어지는 추세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는 우선 ICT제조업에 비해 낮은 ICT서비스업 경쟁력이 꼽혔다.
한국의 ICT서비스 관련 기술 수준은 미국의 85%(2019년 기준) 수준이고, 특히 4차 산업의 핵심인 AI(인공지능)·빅데이터·IoT(사물인터넷) 분야에서 모두 중국보다도 낮다.
아울러 2020년 기준 우리나라 ICT서비스 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7%로, 글로벌 평균(15.1%)을 크게 밑돌고 있다.
투자 측면에서도 인적·조직 자본 등 무형의 비(非)기술혁신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게 한은의 지적이다.
한국의 2011∼2015년 유형투자 대비 무형투자 평균 비중(38.9%)은 미국(74.9%), 영국(74.8%), 네덜란드(73.1%) 등 주요국의 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은은 현행 금융 지원 체계도 디지털 전환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술금융은 안정성보다는 성장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기 때문에, 담보 기반의 대출 등 간접금융보다 지분투자 등의 직접금융이 바람직하지만, 여전히 지원이 대출 위주로 이뤄져 자금 수요가 가장 많은 창업 초기 고위험·성장 기업에 대한 투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탈의 투자기간(5∼7년)과 창업 이후 기업공개(IPO)까지 소요되는 기간(10년 이상) 사이 격차가 크지만, 중간에 투자금을 일부 회수할 수 있는 시장과 수단이 제대로 없어 투자 위험이 커지고 자금 선순환이 제약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선영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과장은 "규제를 기술변화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해 신규 ICT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무형자산 투자의 절대 규모도 늘리고, 기술혁신과 비기술혁신 사이 투자 균형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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