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놔달라" 절규, 길바닥서 치료 대기…아이티 지진 참상

입력 2021-08-17 07:47
수정 2021-08-17 09:24
"진통제 놔달라" 절규, 길바닥서 치료 대기…아이티 지진 참상

다친 아기들 응급 절단 수술해야 하는데 항생제·마취제 동나

380㎜ 폭우 동반한 열대성 저기압 상륙 예고…피해 더 커질 듯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규모 7.2의 지진이 강타한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의 참상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현재까지 1천300명에 가까운 주민이 숨지고 부상자가 5천7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재난 현장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의료 물자 부족으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AP 통신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지진 피해가 집중된 아이티 남서부 도시 레카이의 종합 병원은 부상자들의 절규와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탄식으로 가득했다.

지진으로 크게 다친 주민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자 이 병원 의료진은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야외에 매트리스를 깔아 환자들을 받았다.

하지만, 기본 의약품은 이미 동이 났고 환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길바닥에서 응급 치료와 수술을 기다리는 상황이 펼쳐졌다.

소아과 의사 루세트 기디언은 항생제와 마취제마저 다 떨어진 상황에서 지진으로 크게 다쳐 사지 절단 수술을 해야 하는 아기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여기다 잇따른 여진으로 병원 건물마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아기들은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

7살 딸을 둔 엄마 마설린 찰스는 아이가 벽돌 파편에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쳤지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탄식했고, 자식을 구하려다 다리가 부러진 미셸 델바는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 바깥에서 사흘째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산산조각이 난 팔뼈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움켜쥐고 진통제를 놔달라고 호소하는 84살 노인도 병원에서 목격됐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또 AP 통신은 팔 골절 치료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진통제를 맞은 18살 환자를 사례로 들면서 "그는 행운의 환자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이 병원의 포러스 미첼리트 박사는 "이틀이 지나면 부상자들의 상처 부위는 대부분 감염된다. 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며 진통제와 골절상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용 철제 핀은 거의 바닥이 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악조건 속에서 지진 현장 구조 작업도 힘겹게 이어지고 있지만, 폭우를 동반한 열대성 저기압 그레이스가 곧 상륙할 것으로 예상돼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레이스는 16일 밤 아이티에 상륙해 최대 380㎜ 폭우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되며 곳곳에 돌발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기상 당국은 경고했다.

구호 단체들은 접근이 어려운 지진 피해 지역의 많은 주택이 산사태에 취약한 경사지에 지어졌다며 추가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리 챈들러 아이티 시민보호국장은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의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진 피해로 노숙을 하는 수천 명의 주민이 폭우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라며 "이번 폭풍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많은 아이티인에게 의료 지원과 깨끗한 물 공급, 피난처 제공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국제 사회의 인도주의적 도움을 요청했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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