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평형 전셋값이 15억·9억·12억…이중가격 넘어 '삼중가격'
"갱신시 '5% 제한' 구애받지 않고 시세의 70∼80%에 계약서 써"
임대인-세입자 합의했지만 2년 뒤 분쟁 가능성 남겨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신규·갱신 전셋값이 2배까지 벌어지는 '이중가격' 현상이 보편화된 가운데 최근에는 이를 넘어 '삼중가격'이 형성되고 있어 전세시장의 혼란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법에 따라 전세 계약 갱신 시 보증금을 5% 이내로 올려주면 되지만, 급등한 주변 시세와 이사비 등을 고려해 시세의 70∼80% 선에서 재계약하는 사례가 늘면서 '삼중가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계약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인 경우가 많아 추후 분쟁의 씨앗이 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같은 평형 전세가 15억·9억 12억…"혼돈의 전세시장"
1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면적 84.99㎡는 지난달 2일과 6일 각각 보증금 15억원(20층)과 8억6천100만원(21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15억원은 해당 평형의 신고가 거래다. 8억6천100만원은 8억2천만원에 5%(4천100만원)를 더한 금액으로 이 계약이 갱신 계약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면적인데 신규·갱신 전세 계약간 보증금 차이가 2배 가까이 나는 이중가격 현상이 이 단지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24일에는 같은 평형이 보증금 12억원(5층)이라는 다소 애매한 가격에 계약됐다.
이는 신규·갱신 전셋값의 중간값 수준으로, 전셋값이 세 층위로 나뉜 셈이다.
전세는 특성상 내부 수리 상태나 인테리어, 동향(건물 방향) 등 주거 여건에 따라 가격이 수천만원씩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수억원씩 차이가 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작년부터 전셋값이 치솟아 주변 시세가 2년 전의 2배까지 뛰자 계약 만료를 앞둔 세입자 중에는 재계약을 하면서 시세의 70∼80% 수준으로 전셋값을 올려 계속 거주하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새 임대차법 시행 후 집주인과 세입자의 눈치싸움이 치열하다"며 "전셋값을 올리고 싶은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세입자는 꼼짝없이 나가야 하는 입장인데, 주변 시세는 감당이 안 되고 이사비 등을 고려하면 5%룰에 얽매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새 임대차법의 핵심은 기존 세입자가 2년 더 거주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하고, 이 경우 보증금을 기존의 5% 이내에서 인상하도록 규제하는 것인데, 현장에서는 이런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43㎡도 지난달 5건의 전세 거래가 이뤄졌는데, 2건은 보증금 10억원대(10억원·10억5천만원), 2건은 5억원대(5억5천650만원·5억7천750만원), 1건은 7억원대(7억3천만원) 등 가격 층위가 삼중으로 형성됐다.
삼중가격을 넘어 '다중가격' 양상을 보이는 단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인데 전셋값이 신규·갱신 등 조건과 내부 수리 상태 등에 따라 여러 층위로 분화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서초구 반포동 A 공인 대표는 "전셋값을 결정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 가격이 널뛰기해도 일정에 쫓겨 이사해야 하는 세입자들은 이게 합당한 가격인지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세 시장이 무척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 전세 5% 이상 인상 놓고 '동상이몽'…2년 뒤 분쟁의 씨앗 우려
특히 최근 삼중가격을 초래한 '보증금 5% 초과 재계약'과 관련해서는 추후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주인은 기존 계약을 갱신하면서 보증금을 시세보다 적게 올려줬다고 생각할 소지가 크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5% 넘게 올렸기 때문에 계약갱신권을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유권해석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전세 계약은 갱신이 아니라 신규 계약으로 본다.
기존 보증금에 기반한 갱신 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고, 따라서 세입자에게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계약갱신청구권 카드가 1장 남아있다고 인정한다.
2년 뒤 세입자는 계약을 2년 더 갱신하자고 요구할 수 있고, 동시에 보증금 인상률은 5% 이내로 하자고 주장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집주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송파구 신천동 B 공인 대표는 "시세보다 싼값에 전세 갱신을 해준 집주인들은 내가 2년 더 편하게 살게 해줬는데, 2년 뒤에는 당연히 집을 비우거나 오른 시세에 맞는 보증금을 받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판단에 따르면 집주인이 이런 상황을 신규 계약으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면, 계약 갱신에 따른 '5% 룰'(전월세상한제)을 위반한 셈이 된다.
B 공인 대표는 "지금은 서로 상황이 급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합의를 봤지만, 누구나 자기가 유리한 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추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법이 명확해야 하는데, 정부나 국회가 하는 걸 보면 법이 또 어떻게 바뀔지 가늠할 수 없어 현장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세 품귀로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불필요한 갈등이 증가하고 혼란한 상황이 됐다"며 "지금이라도 법의 대폭 수정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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