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메모가 악필이라…영국 은행털이 실패한 황당 사연

입력 2021-08-13 17:12
수정 2021-08-13 17:17
협박 메모가 악필이라…영국 은행털이 실패한 황당 사연

문장도 은유적이라 금방 이해 어려워

범인 떠난 후에야 메모 해독해 경찰 신고

코미디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연상



(서울=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영국에서 코미디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60대 퇴직자가 은행을 방문해 창구 직원에게 돈을 내놓으라는 협박 메모를 전달했는데 워낙 악필인데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작성되는 바람에 은행 직원이 이해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범인은 폐쇄회로(CC)TV 추적 등을 통해 범행 4개월만인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12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앨런 슬래터리(67) 씨는 지난 3월 18일 오전 영국 서식스주 이스트본에 있는 한 은행 지점에 들어가 창구직원에게 자신이 직접 쓴 협박 메모를 건넸다.

그러나 글씨가 워낙 악필인 탓에 직원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돈을 주지 못했다. 이에 슬래터리씨는 조용히 빈손으로 은행을 나왔다.

메모에는 '당신의 차단막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냥 10(파운드)과 20(파운드)을 건네라. 다른 고객들을 생각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가 떠난 뒤 간신히 메모 내용을 이해한 은행 직원들은 슬래터리 씨가 강도였음을 알아채고 그제야 경찰에 신고했다.

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강도행각을 두고 외신은 1969년에 개봉한 미국 코미디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Take the Money and Run)를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영화에서도 은행 강도는 자신이 갈겨쓴 협박 메모에 적힌 단어를 두고 은행 직원들과 'gun' 인지 'gub'인지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1차 범행에 실패한 슬래터리 씨는 이후 2주일 동안 똑같은 수법으로 두 차례 더 은행털이에 나섰다.

두 번째로 찾은 다른 은행 지점에서는 직원이 악필로 작성된 위협 메모를 이해한 까닭에 바로 3천300달러(한화 380여만 원)를 챙길 수 있었다. 이어 마지막 범행에서는 강도같지 않은 외모를 하고 있었던 그에게 직원들이 저항해 강도행각은 다시 미수에 그쳤다.

경찰은 범행 현장 안팎에서 확보한 CCTV 영상을 분석해 슬래터리 씨가 2차 범행 직후 버스를 탄 것을 확인했다.

또 해당 버스 회사를 통해 승차권에 부착된 사진 속 남성과 CCTV에 찍힌 슬래터리 씨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경찰은 지난달 이를 근거로 슬래터리 씨 주소를 확보한 뒤 강도 및 강도 미수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

재판에 넘겨진 그는 징역 4년에 보호관찰 2년을 선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은행 직원들과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며 "범죄의 심각성이 형량에 반영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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