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ARF서 북에 대화 촉구한 한미…인도적 협력서 실마리 찾아가길
(서울=연합뉴스) 북한과의 대화 복원작업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6일 화상으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북한에 대화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로 했던 남북 정상 간 합의의 이행을 촉구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도 북한이 권한을 부여받은 협상 대표만 지정하면 조건 없이 언제 어디서든 만나겠다는 종전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상기했다. 하지만 북한 대표로 참석한 안광일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는 한미의 대화 촉구에 직접적인 화답은 하지 않은 채 '외부의 적대적인 압력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취지의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고 한다.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과 미국의 외교 당국자가 상대의 의중을 탐색할 수 있는 자리였으나, 입장의 간극만 거듭 확인한 셈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무상 대신 급이 낮은 현지 대사를 회의에 파견한 것에서도 북한의 뜨뜻미지근한 태도가 엿보였다. 한미연합훈련이 임박한 미묘한 시점에 한미가 내민 손을 덥석 잡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ARF 외교장관회의는 장기 교착상태인 남북, 북미 대화의 복원을 위한 '첫술'에 해당한다. 외교적 포만감을 느끼기 위한 단계에 이르려면 2019년 초 북미 하노이 노딜 정상회담 이후 해체됐던 상호 신뢰를 다시 구축해 나아가는 선결과제를 거쳐야 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올해 초 출범 이후 대북 정책을 실행에 옮긴 실적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관여도 아니고 압박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멈출 필요가 있다. '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듭된 '열린 자세' 확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의 외교 수뇌가 대북 인도주의적 협력 방안에 관해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은 현상 타개 가능성을 키우는 고무적인 움직임이다. 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코로나19 대응을 비롯한 보건 협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 북한 함경남도 일대의 폭우피해를 돕기 위한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실제 북한은 노동당 함경남도 군사위원회 확대 회의를 긴급 소집해 공병부대와 지역 주둔 군부대 동원 등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 피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백신과 수해 지원 등 비정무적 분야를 대화 복원을 위한 우회로로 활용한다면 비록 시간은 더딜지 모르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유용한 루트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고장난명이라고 북한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때만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이 과정에서 한가지 걱정스러운 대목은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이 큰 미국과 중국의 불편한 관계와 이에 따른 갈등 증폭 가능성이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ARF 외교장관회의에서 한미합동연습을 지목해 현 정세 아래서는 건설적인 측면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긴장 격화를 초래할 수 있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에둘렀지만 훈련중단 촉구나 마찬가지다. 북한은 왕 부장의 발언을 외무성 홈페이지에 소개함으로써 자신들이 줄곧 주장해 온 훈련중단을 간접 촉구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왕 부장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내로남불식' 내정간섭이라는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신장·홍콩 문제를 제기한 미국을 겨냥해선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던 중국이 정작 한미훈련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이치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또한 북한이 수년간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점을 들어 대북 제재 완화를 주문한 왕 부장 언급도 미국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견제구를 날린다면 남북, 북미 관계의 복원은 일정한 한계에 부딪힐 게 뻔하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구도 속에서는 남북한의 주체적 대화 의지와 실행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대화 촉구에 응답하고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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