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으로 몰려 3년간 정신병원 감금…美 노숙자 사연에 '공분'
경찰·법원·병원의 총체적 직무유기
무고 주장하면 "망상에 빠져있다"
간단한 신원 대조 절차도 안했어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미국 남성이 경찰과 법원, 검찰, 변호사, 병원 등 관계 당국들의 총체적인 직무 유기로 정신병원에서 3년 가까이 억울한 감금생활을 했던 사연이 알려져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는 마약사범으로 오해받아 체포된 후 치료 명분으로 정신병원에 구금됐고, 이후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당국의 무관심 속에 번번이 좌절됐다.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러한 사연은 법률적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하와이 무죄 프로젝트'가 지난 2일 법원에 제출한 36쪽에 달하는 진정서에서 밝혀졌다.
사건의 시작은 2017년 5월 조슈아 스프리스터바크(50)가 하와이주 호놀룰루에 있는 노숙자 쉼터 앞에서 무료 배식을 기다리던 도중 일어났다.
당시 무더운 날씨 탓에 그는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인도에 쓰러져 누워있었는데, 깨어나 보니 경찰에 체포된 상태였다.
조슈아는 공공장소에서 누워 있었다는 혐의로 체포된 줄로만 알았지만, 실상은 경찰이 그를 2006년 마약 범죄 이후 보호관찰을 어긴 토마스 캐슬베리(49)로 착각하고 체포한 것이었다.
조슈아는 체포 당시 경찰에 자신의 이름, 생년월일과 사회보장번호(SSN)를 제시했지만, 경찰은 그가 토마스라고 주장하고 유치장에 가뒀다. 이후 그는 자신의 무고를 증명할 지문등록과 사진 촬영 등 절차를 거쳤지만, 실제 신원조회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한 달 뒤 법원으로 향했을 때 조슈아는 그의 변호를 담당한 국선 변호사에 이름 등 개인정보를 알려줬고 실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 2006년에 자신은 범행 장소에 있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변호사는 조슈아를 위해 재수사를 요청하는 대신 그의 정신상태 감정을 요청했다.
이후 병원에 감금된 조슈아는 지속해서 그의 무고를 주장했다. 병원 측에도 개인정보를 전달했지만 그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생 마약에 손대본 적도 없는 그는 마약중독자 대상인 그룹 세션에 참가해야 했으며,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처방 결과에 따라 항정신병 약물까지 복용해야 했다.
조슈아는 약물 복용량이 과다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무죄를 주장할수록 병원에서는 그를 망상장애와 정신병으로 판단하고 더 많은 약을 투여했다.
이 같은 상황은 2년 8개월간 이어졌다.
당시 조슈아의 변호를 맡은 국선 변호사들은 이를 시정하기 위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2006년 실제 범인 토마스를 대변했던 전력이 있었지만, 당시 범인 사진이나 사회보장번호를 대조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또 간단한 기록 조회로 진범인 토마스가 2016년부터 알라스카 교도소에 구금돼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이조차도 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조슈아는 다시 한번 강력히 항변했다. 그는 토마스가 아니고, 보호관찰 대상이 아니었으며 마약에 손대본 적도 없고 토마스의 범행 장소에도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때 의사 한 명이 조슈아의 말을 듣고 그가 무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조슈아가 정신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이전 의견에서 선회해 직접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조슈아가 진실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에 경찰에서 조슈아의 지문 및 사진 대조를 진행했고, 실제 범인과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됐다.
2020년 1월 조슈아는 마침내 병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법무부는 법원과 변호사에 이 사실을 알렸고 밀실 회의를 열었다. 회의 내용은 법원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진정서를 작성한 한 변호사는 "조슈아가 가난한 노숙자기 때문에 그들 눈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슈아는 사건 이후 그의 친누나와 같이 살고 있다.
2003년에 누나와 하와이로 이주해온 그는 토마스의 범행 시기인 2006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퇴원 이후 조슈아를 진료한 의사는 감금 당시 정신 약물 투여량이 치료 수준을 넘어섰고 이 때문에 조슈아가 긴장증(온몸의 운동 기능이 극도로 억제되어 움직이지 않는 증상)을 겪었다고 판단했다.
하와이 무죄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 케네스 로슨은 "사법 시스템의 모든 측면이 이 같은 정의 실종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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