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느림보 사법시스템' 이번엔 바뀌나…개혁안 하원 통과

입력 2021-08-05 21:05
이탈리아 '느림보 사법시스템' 이번엔 바뀌나…개혁안 하원 통과

드라기 총리, 연정 갈등 증폭하자 '신임안' 연계 배수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가 유럽에서도 느리기로 악명 높은 사법 시스템 개혁의 첫 관문을 넘어섰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탈리아 하원은 지난 3일(현지시간) 마리오 드라기 총리 내각이 제안한 사법제도 개혁안을 의결했다. 두 차례 표결에서 462대 55, 458대 46으로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다.

이번 개혁안은 형사재판의 공판 기간을 단축하는 등 사법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범죄의 공소시효 규정은 그대로 두되 1∼3심 심급별 공판 기한을 설정해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다만, 테러·조직범죄·성범죄·마약 범죄 등과 같은 주요 범죄의 경우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재판을 진행해 단죄하도록 했다. 해당 범죄의 경우 공판 지연에 따른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면하는 폐단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형사재판이 더디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재력을 갖춘 유력 인사는 종종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해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재판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탈리아 정가의 '추문 제조기'로 불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도 공소시효를 악용해 10차례 이상 법망을 피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법시스템 개혁은 지난 수십년 간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개혁 과제로 꾸준히 거론됐으나 정당 간 입장차로 공전해왔다.

전임인 주세페 콘테 총리 내각에서 입안하고 현 내각에서 다시 손을 본 현 사법개혁안 역시 드라기 총리를 떠받치는 연립정부 구성 정당 간 견해차로 수 주간 정쟁의 대상이 됐다.

의회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이 범죄의 공소시효 자체를 없애는 더 과격한 안을 고집해 다른 연정 구성 정당들과 갈등을 빚었다.

끝내 정당 간 합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드라기 총리가 사법개혁안 표결을 내각 신임안과 연계하는 배수진을 쳤고 결국 주요 테러 등 주요 범죄는 예외적으로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절충안을 토대로 오성운동이 한발 물러서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갈등이 봉합됐다.

이번 사법개혁안은 오는 9월 상원 의결을 거쳐 정식으로 입법화될 예정이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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