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암' 관여 텔로머라제 효소, '정크 DNA'가 제어한다
유전자 활성화 DNA 시퀀스 발견, 서열 길면 유전자 활성도 높아
미국 워싱턴 주립대 연구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DNA를 복제해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진다.
텔로미어(telomere)는 진핵생물 염색체의 양쪽 말단을 덮고 있는 DNA 조각을 말한다.
반복적인 염기서열을 가진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의 손상이나 근접 염색체와의 융합을 막는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의 단축은 인간의 노화와 관련이 있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다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세포는 분열을 중단하고 늙어 죽는다.
그런데 생식 세포와 암세포는 분열한 뒤에도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는다. 텔로머라제(telomerase)라는 효소가 계속 텔로미어를 보충하기 때문이다.
텔로머라제의 이런 작용엔 대조적인 양면성이 존재한다.
언뜻 보면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노화 시계'를 출발점으로 재설정하는 것 같지만, 암세포의 폭발적인 증식과 종양 형성을 돕는 것도 텔로머라제다.
이렇게 중요한 텔로머라제의 활성화를 유전자를 통해 제어하는 DNA 염기서열이 발견됐다.
VNTR2-1으로 명명된 이 염기서열은 단백질 생성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정크 DNA(junk DNA)'에 속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워싱턴 주립대(WSU) 약대의 주지웨(Jiyue Zhu) 교수팀은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27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가장 주목할 부분은 텔레머라제를 활성화하는 유전자를 이른바 정크 DNA가 제어한다는 것이다.
텔레머라제 유전자는 노화와 암을 정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어 많은 과학자의 관심을 끌어왔다.
연구팀은 VNTR2-1 구간의 염기서열을 제거하면 텔로미어가 짧아지면서 암세포가 죽고 종양도 성장을 멈춘다는 걸 확인했다.
또한 이 염기서열의 반복 횟수는 수명의 길이와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100세 이상 장수한 미국인의 DNA 샘플에서 해당 염기서열의 길이를 관찰해 1988~2008년 진행된 '조지아 100세 장수인 연구(Georgia Centenarian Study)'의 대조군과 비교했다.
이 염기서열은 짧게 '53회 반복'부터 길게 '160회 반복'의 분포를 보였다.
분석 결과, 염기서열이 길수록 텔로머라제 유전자의 활성도가 높았다.
특이하게도 아주 짧은 VNTR2-1 염기서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참여자에게서만 발견됐다.
이렇게 짧은 VNTR2-1 염기서열을 갖고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례는 대조군보다 적었다.
하지만 이 염기서열이 짧다고 반드시 단명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텔로머라제 유전자가 덜 활성화해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암에 걸릴 위험이 줄기 때문이다.
주 교수는 "VNTR2-1 염기서열이 노화하거나 암에 걸리는 유전적 다양성을 야기하는 것 같다"라면서 "암유전자와 종양 억제 유전자가 암에 걸리는 이유를 모두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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