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포기 순간 구조대 도착…생존자가 전한 中지하철 홍수 참사

입력 2021-07-25 12:57
수정 2021-07-25 13:10
탈출 포기 순간 구조대 도착…생존자가 전한 中지하철 홍수 참사

폭우로 열차 안 순식간에 물 차올라…전등·환기 시스템도 꺼져 아비규환

소화기로 창문 내리치며 필사의 탈출 시도…일부 승객, 깨진 창문 틈으로 빠져나가

마지막 순간 예감한 듯 아이 꼭 안은 여성도…사고로 사망 12명, 실종 2명



(서울=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탈출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날 위해 가끔 엄마를 보러 가줘"

기록적인 폭우로 빗물이 열차 안을 덮치면서 승객 12명이 숨진 중국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 지하철 홍수 참사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20대 여성이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정저우시에 폭우가 내렸던 지난 20일 오후 5시 45분께 퓨어 리(26)씨가 타고 있던 지하철 5호선 열차가 운행 중 갑자기 멈춰 섰다.

다시 후진하기 시작했지만 '끼익'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선로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고, 열차도 크게 흔들리면서 다시 멈춰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 안으로 빗물이 밀려들었고 이 때문에 열차가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 탈출하기 위해 열차 앞쪽이나 반대편 문 쪽으로 떼지어 움직였다.

탈출 과정에서 선로 위로 미끄러진 한 승객은 급류에 떠내려가 실종되기도 했다.

당시 열차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리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평소 사용하던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친구에게 위기 상황을 알리는 것뿐이었다.

빗물은 계속해서 열차 안으로 쏟아졌고 1시간여가 지난 시점에 물은 어느덧 리씨의 어깨까지 차올랐다.

아이들과 키가 작은 어른들은 좌석 위로 올라서야 했으며, 다급해진 일부 승객은 경찰서, 소방서, 친구, 가족 등에게 전화를 했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열차 안 전등과 환기 시스템도 꺼져버렸다. 이에 일부 승객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문틈에 얼굴을 갖다 대기도 했다.

아비규환으로 변한 컴컴한 실내를 비상등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물이 리씨 목까지 차오르자 그녀는 친구에게 자신의 위챗 계정 비밀번호를 전송했다.

이대로 목숨을 잃을 경우 가족 등이 자신의 계정에 접속해 저장된 자료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처럼 리씨가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열차 안에 있던 다른 한 여성도 마지막 순간을 예감한 듯 자신의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차 안 공기가 점점 고갈되자 두려움을 느낀 승객들은 좌석 아래 있던 소화기를 사용해 번갈아 가면서 유리창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소화기 안에 있던 분말이 주변 승객들 얼굴로 튀었다.

창문이 깨졌을 때쯤 기적적으로 열차 밖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몇몇 승객이 깨진 창문 틈으로 열차를 빠져나왔지만, 리씨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가슴까지 차오른 물에 지하철 500명 집단패닉…12명 사망 / 연합뉴스 (Yonhapnews)

열차에 갇힌 지 세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마침내 구조대가 도착했다.

1시간쯤 지나 구조대가 열어젖힌 열차 문으로 구조된 리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좁은 통로를 따라 이동한 끝에 안전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저우 지하철 당국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 열차에는 승객 500여 명이 타고 있었으며 현재까지 사망한 승객은 12명, 실종자는 2명으로 집계됐다.

당국은 또 참사 원인에 대해 "폭우로 인근 지역에 고인 빗물이 선로로 들어오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참사 발생 후 사고 지하철역 주변에는 사망자들을 위한 작은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리씨는 사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다른 사람을 도와준 승객들에게 감사하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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