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상선언', 사상 초유 재난 앞 인간의 민낯 그리고 희망
한재림 신작,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 송강호·이병헌 주연
(칸=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1. '동네 시끄럽게 무슨 잔치야'라면서 구시렁거리는 대학생 딸에게 인호(송강호)는 "시끄럽기는, 다 도우면서 사는 거지!"라며 핀잔을 준다.
베테랑 형사인 인호가 일 때문에 휴가를 또 취소하자 아내는 보름 동안 매일 먹을 만큼 많은 양의 곰국을 끓여놓고 친구들과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
#2.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재혁'(이병헌)은 끔찍이 아끼는 딸의 아토피를 치료할 수 있을까 싶어 공기가 맑은 하와이로 향하려고 인천공항을 찾았다.
재혁은 세상 착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불쾌한 질문을 퍼부으며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석'(임시완)이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걸 발견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제74회 칸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한재림 감독의 영화 '비상선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영화배우 송강호와 이병헌을 두 축으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풀어간다.
2시간 27분 동안 두 배우가 어떤 호흡을 보여줄까 기대했지만 한 사람은 지상에서, 다른 한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가장으로서 분투하느라 마주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송강호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찾아오는 절망감을 절절하게 표현해낸다.
이병헌은 과거의 일로 상처를 받아 의기소침해져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놨던 강단을 끄집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교차 편집으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갈등은 절정에 이르렀다가 해소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이제 끝났구나 싶으면 상황을 엎는 변수가 나타난다.
영화는 비행기에 한번 발을 들이면 그 안에서 무슨 난리가 나든 간에 착륙할 때까지 몇 시간을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한다는 공포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인천 공항에서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까지 비행기로 걸리는 시간은 직항 기준 짧으면 7시간 50분, 길면 8시간 10분이다. 비행기 타기가 무서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긴 시간이다.
다른 교통수단과 달리 비행기는 이동 중 연료가 떨어지면 끝이다. 승객과 승무원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영화의 제목은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을 대변하기 위해 나왔다.
비상선언은 조종사가 재난 상황에 직면해 항공기의 정상적인 운항이 더는 불가능하고 판단하고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도망갈 구석이 없는 공간에 갇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인간은 이기적으로 변하지만, 인간이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재난 앞에서 우리는 두렵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행동하죠. 그러다 보면 실수도 하는 거고, 거기서 반성하고 다시 앞으로 나가는 것도 우리의 모습 아닐까요"라고 한재림 감독은 말했다.
이번 신작은 2005년 '연애의 목적', 2007년 '우아한 세계', 2013년 '관상', 2017년 '더 킹' 등을 선보인 한 감독의 첫 칸 영화제 입성 작품이다.
한국 개봉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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