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의원과 쫓는 경찰…42년 전에도 텍사스 민주당 가출 투쟁
정족수 미달로 법안 무산시키는 '벼랑 끝 전술' 여러 차례 감행
1979년 '살인 벌떼' 의원들은 성공…2003년에는 이탈자 생겨 실패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미국 텍사스주 공화당이 추진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무산시키기 위한 민주당 의원들의 '가출 투쟁'이 주목받고 있다.
공화당이 처리하려는 선거법 개정안은 우편투표 신원 확인 강화, 미리 요구하지 않은 유권자에 대한 부재자 투표 발송 금지 등을 담고 있으며 민주당은 시민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악법이라고 반발해왔다.
하지만, 텍사스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다수결 원칙을 적용해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게 되자 60명에 가까운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의결 정족수 미달로 선거법 처리를 무산시키기 위해 의회를 비우고 워싱턴DC로 향한 것이다.
텍사스 민주당 의원들의 가출 투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보수의 아성인 텍사스에서 수적 열세에 놓인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의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회기가 끝날 때까지 숨어버리거나 주 경계 밖으로 도주하는 벼랑 끝 전술을 몇 차례 감행했다고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42년 전 '살인 벌떼(Killer Bees)로 불린 주 상원의원 12명의 가출 투쟁이다.
이들은 1979년 필리버스터를 동원해 공화당 법안을 효과적으로 저지했고 공화당은 이들 의원에게 벌침을 어디로 쏠지 모르는 '살인 벌떼'라는 별명을 붙였다.
'살인 벌떼' 의원들은 같은 해 5월 공화당이 특정 후보에 유리한 대선 경선 법안을 밀어붙이려 하자 의결 정족수 미달 전략을 택했다.
주 의회를 떠나 한 아파트로 꼭꼭 숨어버린 것이다.
공화당 주 정부는 공공안전부 소속 수사 기관인 '텍사스 레인저스'와 경찰을 동원해 닷새 동안 이들 의원을 추적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공화당은 해당 법안을 철회했다.
2003년에는 텍사스주 선거구획정안을 놓고 민주당 의원들이 가출 투쟁을 벌였다.
50여명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공화당이 발의한 선거구획정안을 막기 위해 텍사스주 경계에서 30마일(48㎞) 떨어진 오클라호마주 아드모어의 한 모텔로 피신했고 획정안은 정족수 미달로 불발됐다.
하지만 공화당은 두 달 후 다시 의회를 소집했고 이번에는 11명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텍사스 주도 오스틴에서 640마일(약 1천30㎞) 떨어진 뉴멕시코주로 도망쳤다.
이에 공화당 주 정부는 경찰 체포조를 파견했고 한 달간 대치 끝에 민주당에서 1명의 이탈자가 나와 의회로 복귀함으로써 선거구획정안은 공화당 뜻대로 처리됐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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