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지친 쿠바 국민, 대규모 반정부 시위…'자유' 외쳐(종합)
코로나19 악화·식량난·전력난에 민심 들끓어…"94년 이후 최대규모"
미·스페인 등서도 지지 시위…쿠바 대통령 "미국서 선동" 주장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공산국가 쿠바에서 흔치 않은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펼쳐졌다.
11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수도 아바나 인근 산안토니오 델로스바뇨스를 시작으로 아바나, 산티아고데쿠바 등 곳곳에서 시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권에 항의했다.
이날 소셜미디어에는 시민들이 거리를 행진하면서 "독재 타도", "자유", "조국과 삶" 등의 구호를 외치는 영상들이 'SOS쿠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속속 올라왔다.
'조국과 삶'(Patria y vida)은 쿠바 뮤지션들이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구호 '조국 아니면 죽음'을 비틀어서 만든 힙합 노래로, 상징적인 반체제 구호가 됐다.
이날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시위 현장을 찾자 일부 젊은 시위대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으며 "두렵지 않다"고 외친 이들도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쿠바 출신 이민자들이 많은 미국 마이애미와 스페인 등 쿠바 바깥에서도 지지 시위가 펼쳐졌다.
미 플로리다국제대의 마이클 부스타만테 교수는 로이터에 1994년 여름 이후 쿠바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라며 "(1994년과 달리) 이번엔 수도에만 한정된 시위도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1994년 8월 5일 아바나에서는 경제난 등에 지친 시민 수천 명이 이례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경찰 진압으로 시위가 진정된 후 쿠바인들의 미국 이민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공산당 일당 체제인 쿠바에선 반정부 시위가 드물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의 발달 속에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번 시위 역시 1994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경제봉쇄 등으로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식량, 의약품 등 물자 부족이 심화하면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선 상점 앞에 오래 줄을 늘어서야 하고, 전력난 속에 정전도 잦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악화하며 국민이 고통이 더욱 커졌다.
쿠바는 풍부한 의료 인력과 엄격한 통제 덕분에 코로나19 초기 눈에 띄게 선방했으나 최근 변이 확산 속에 상황이 급격히 악화해 하루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일찌감치 시민들에게 접종하고 있지만, 무서운 감염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지치고 분노한 시위대는 "백신을 달라"거나 "굶주림을 끝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미 일간 마이애미헤럴드는 전했다.
한 시위자는 AFP에 "전기와 식량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참여했다고 말했고, 산티아고의 시민은 로이터에 "위기에 항의하는 것이다. 식량도 약도 없다"고 호소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영방송 연설에서 현재 쿠바가 겪고 있는 위기와 혼란을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리며 "쿠바계 미국인 마피아"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시위를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그러면서 "모든 혁명가와 공산주의자들이 도발 시도에 맞서 거리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실제로 이날 일부 친정부 시위대도 거리로 나와 쿠바 혁명과 카스트로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쳤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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