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아이티 대통령, 독재자냐 개혁가냐…엇갈린 평가

입력 2021-07-08 11:12
수정 2021-07-08 11:13
피살된 아이티 대통령, 독재자냐 개혁가냐…엇갈린 평가

바나나수출·자동차부품업 일군 사업가 출신…별명 '바나나맨'

개헌으로 권력확대 시도해 저항 불러일으켜…야권, 끊임없이 사임 압박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사저에서 괴한들의 총격으로 숨진 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을 두고 과도한 권력을 추구한 독재자라는 평가와 최빈국 아이티의 진정한 변화를 열망한 개혁가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2017년 2월 취임한 모이즈 대통령은 바나나 수출업과 자동차 부품사업 등을 일군 사업가 출신으로, 정치권에서는 조롱하는 뜻이 없지 않은 '바나나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사업가로서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으로도 활동하던 그를 전임자였던 미셸 마텔리 대통령이 2015년 차기 대선 후보로 지명할 때까지만 해도 중앙정치권에서 그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취임 후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던 모이즈는 그러나 대통령 임기와 아이티의 인프라 건설사업 등을 놓고 야당은 물론 기존의 권력 엘리트층과 끊임없이 갈등했다.



야권의 강한 반발 속에서도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을 밀어붙였고, 저항하는 야당인사들을 탄압하려고 정치깡패를 동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재임 기간 가시지 않은 사회 혼란에 시민들의 퇴진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오는 9월 모이즈 대통령이 추진해온 개헌 국민투표와 대선, 총선이 한꺼번에 예정돼 있어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혼란은 더욱 극심한 양상을 띠었다.

일각에선 모이즈가 아이티의 각종 정부 계약을 독점적으로 향유하던 파워 엘리트층을 해체하려 한 개혁가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활동하는 아이티 출신의 사회운동가 레오니 에르망탱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패한 정치인이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개혁가였다"고 말했다.

모이즈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가 기득권 엘리트들의 이익에 복무한 구조를 깨려고 시도한 점을 인정한다고 한다.



과거 모이즈의 정치적 동지였다가 정적이 된 야권 정치인 피에르 레지날드 불로는 "그는 아이티의 변화를 진정 원하는 사람이었다"면서 암살 배후 세력에 관한 질문에는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아이티 정치권과 재계에 모이즈 대통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적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모이즈는 극심한 정국 혼란과 자신의 사임을 요구하는 연쇄 시위, 기존 정치 엘리트들의 견제 속에 자신의 죽음도 어느 정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티의 전 야당 상원의원 시몽 데라스는 "모이즈는 생전 한 연설에서 자신이 정부 독점계약에 기댄 부유층을 표적으로 삼았으며, 이것이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며 "그가 예언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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