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도 넘는 '살인 더위' 이라크…냉장고로 열 식히기도
정전 잇따라 시민들 거리로 나와 시위…전력부 장관은 사퇴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중동 국가 중 가장 더운 곳으로 꼽히는 이라크에 최근 섭씨 50도 안팎의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탓에 냉방 기기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곳이 많아서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일어난다.
올해는 이란으로부터 전력 수입도 원활하지 못해 성난 시민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 남부 바스라 수은주 52도까지 올라…"더위가 사람 미치게 만들어"
현지 방송 알수마리아는 지난 2일(현지시간) 최근 더위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로 이라크 대부분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남부 바스라 지역은 52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남부 지역 도시들은 더위로 인해 근로시간을 단축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한 이라크 시민들은 에어컨이 있는 차에서 먹고 자며 하루에 여러 번 샤워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일부 상점들은 손님의 발길을 유도하려고 출입문 앞에 임시 샤워 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바스라에 사는 알리 카라는 AFP 통신에 "52도까지 기온이 올라갔고, 아이 체온을 내리기 위해서 몇 분간 냉장고에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바스라항만 노동자인 메샬 하셈도 "비닐에 담긴 얼음을 사서 아이들이 열을 식힐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면서 "정전이 잦아 냉방이 안되고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영국 BBC 방송은 극심한 더위와 잦은 정전으로 이라크 남부 도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발전소 점거 농성을 벌인 한 시위대는 "우리 중에는 아이와 노인이 있다"면서 "(시위 말고는)다른 방법이 없으며 더위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 1일부터 미산과 와싯 지역에서는 시위와 경찰과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시위대 12명과 경찰 7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 전력부 장관 사퇴…이란산 전기 수입량 줄어 전력난 가중
이라크 정부는 전력난의 원인으로 발전 시설 사보타주(의도적 파괴행위), 연료 부족, 이란으로부터의 전기 수입량 감소 등을 꼽는다.
국영 알이라키야 방송에 따르면 전력부는 최근 남부 전력망에 배후를 알 수 없는 공격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광범위한 정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아흐마드 무사 전력부 대변인은 "누군가가 이라크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마제드 한투쉬 전력부 장관이 전력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나 성난 민심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 무스타파 알카드히미 이라크 총리는 2일 성명을 내고 "정전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위원회를 신설하고, 전력망 파괴 및 교란 행위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AFP 통신은 올해 이라크의 전력난이 유독 심한 이유로 이란산 전기 수입량이 줄어든 것에 주목했다.
이라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2위 산유국일 만큼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침공 뒤 이어진 내전으로 전력 기반시설이 파괴됐고, 정치권의 부패가 만연한 탓에 복구 작업이 더뎌 여전히 전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이라크 전력 공급량의 3분의 1을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달 29일 이라크 정부가 전기 수입 대금 60억 달러(약 6조8천억원)를 지불하지 않아 향후 공급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의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타격 등의 이유로 이 돈을 지불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BBC의 중동 분석가 앨런 존스턴은 이라크 전력난과 관련해 "정부의 잘못된 전력망 관리와 부패로 인해 수년째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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