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매체 입장신문, 모든 칼럼 내려…"'문자의 옥' 왔다"

입력 2021-06-28 10:45
수정 2021-06-28 13:47
홍콩 매체 입장신문, 모든 칼럼 내려…"'문자의 옥' 왔다"

후원금 모집·구독 신청도 중단…"당국 단속에 선제적인 조치"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민주진영 온라인매체 입장신문(立場新聞)이 "홍콩에 '문자의 옥'(文字獄)이 왔다"며 모든 칼럼을 내리고 후원금 모집도 중단했다.

반중신문 빈과일보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으며 폐간된 지 사흘만의 조치다.

빈과일보 폐간이 홍콩 언론계에 공포감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입장신문은 지난 27일 밤 성명을 통해 "홍콩에 문자의 옥이 왔기 때문에 모든 후원자와 저자, 편집자 등을 보호하고 모든 부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5가지 공지사항을 발표한다"고 고지했다.

문자의 옥은 과거 중국에서 문서에 적힌 내용이 황제나 체제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필자를 처벌한 숙청 방식으로, 지식인에 대한 탄압을 뜻한다.

홍콩 경찰은 빈과일보에 2019년부터 실린 30여편의 글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고 밝혔으며, 빈과일보 논설위원 2명을 외세와 결탁 혐의로 체포했다.

입장신문은 지난달 이전에 게재한 칼럼과 블로그 게시물, 독자 기고 등 모든 논평을 일시적으로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집필자들에게 해당 글의 게재와 관련한 위험에 대해 논의한 후 계속 게재 의사 여부에 따라 사이트에 다시 올리겠다고 설명했다.

또 자사가 자산압류 등 위험에 처할 경우 독자와 후원자들의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조치로 후원금 모집을 중단하고 신규 구독 신청도 받지 않겠다고 안내했다.

그러면서 향후 9~12개월 운영자금이 있으며, 향후 필요할 경우 다시 홍콩인들에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홍콩 경찰은 지난 17일 빈과일보를 압수수색하고 자산 1천800만 홍콩달러(약 26억 원)를 동결했다.

빈과일보는 직원 임금 지급 등 운영자금이 없어 결국 폐간을 선언했다.

입장신문은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반년 이상 근무한 직원의 고용 계약을 해지하고, 재입사 의사를 타진해 재계약을 진행했다고도 밝혔다. 그 결과 대부분의 직원이 남아있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공민당의 마거릿 응 전 입법회 의원 등 자사 이사회의 이사 8명 중 6명이 사임했다고 전했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 이후 그해 12월에 창간한 입장신문은 민주진영 온라인 매체로 인기를 누려왔다. 특히 2019년 반정부 시위 당시 적극적인 온라인 생중계로 경찰의 시위대 탄압을 전달해 관심을 끌었다.

입장신문은 "지난 1년간 홍콩보안법이 우리에게 친숙한 홍콩을 변화시켰음에도 입장뉴스는 보도에 있어 금기나 한계를 설정하지 않았다"며 "대중의 이익, 뉴스 가치가 있는 사실과 의견을 전해왔고 이는 앞으로도 같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빈과일보 폐간 이후 당국의 단속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를 내놓은 매체는 입장신문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홍콩 행정장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구성원인 로니 퉁은 글을 내리고 간부들이 사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퉁은 SCMP에 "언론사가 죄를 지었다면 여러 글을 내린다고 달라질 건 없다"면서 "죄를 지었을 당시 누가 책임자였냐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콩 침례대 브루스 루이 강사는 "빈과일보 폐간 이후 입장뉴스 경영진은 자신들이 다음 타깃이 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이 중국공산당에 반하는 내용을 쓸 때는 조심해야한다고 경고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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