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빈과일보 100만부로 '고통스런 작별'…독자들 구매행렬

입력 2021-06-24 09:49
수정 2021-06-24 11:28
홍콩 빈과일보 100만부로 '고통스런 작별'…독자들 구매행렬

평소보다 12배 많이 발행하며 26년 역사 마감·홈페이지 중단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24일 마지막 신문을 발행하며 26년 역사를 뒤로했다.

창간 26주년을 자축한 지 나흘만으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1주년을 6일 앞둔 시점에 폐간됐다.

빈과일보는 마지막 신문을 평소보다 12배 가량 많은 100만부를 발행하며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1면에는 스마트폰 조명등으로 정관오에 있는 빈과일보 사옥 전경을 비추는 한 지지자의 손과 함께 '빗속에서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 '우리는 빈과일보를 지지한다'는 글자가 새겨졌다.

총 20면으로 발행된 마지막 신문은 9면까지 빈과일보에 대한 최근 당국의 단속과 독자들이 전하는 아쉬움으로 채워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명보 등 다른 홍콩 매체들도 이날 1~3면을 통해 빈과일보의 폐간 소식을 전했다.



SCMP에 따르면 빈과일보 사옥에서는 전날 밤 11시45분 마지막판의 인쇄가 시작됐다.

인쇄기의 버튼이 눌리자 빈과일보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빈과일보 한 기자는 SCMP에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기사를 쓰면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기자는 "우리의 폐간으로 구속된 동료들이 풀려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밝혔다.

사옥 밖에는 폐간 소식을 듣고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힘내라 빈과일보!"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2019년 반정부 시위 때 등장한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치기도 했다.

마지막 신문 발간에 앞서 전날 밤 11시59분 빈과일보의 홈페이지는 서비스를 중단했다.

전날까지는 업데이트만 안될 뿐 기존 기사들이 올라와 있었으나 해당 시각 이후 빈과일보의 영문판, 중문판 홈페이지에는 '구독자에게 알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안내문만 게재돼 있다.



홍콩 거리의 신문 가판대에는 전날 자정께부터 수백명의 독자들이 모여들어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몽콕 등지에서는 가판대 앞에 수십 m 길게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이날 0시 55분께 초판이 도착하자 독자들은 2~10부씩 신문을 사갔다.

한 가판대의 주인은 SCMP에 "오늘 평소보다 많은 8천부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12부를 산 한 독자는 공영방송 RTHK에 "빈과일보를 살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오늘은 불행한 날"이라며 "신문을 동료와 가족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7시 기자가 찾은 호만틴의 신문가판대에서도 빈과일보 구매 행렬이 이어졌다.

한 젊은 여성은 10부를 사들었고, 한 노인도 3부를 한꺼번에 집어 값을 치렀다. 5분여 지켜보는 동안 해당 가판대를 찾은 이들은 모두 빈과일보를 사갔고 절반 이상이 2부 이상 구매했다.

가판대 뒤에는 빈과일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게 보였다.





앞서 홍콩 경찰 내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담당부서인 국가안전처는 지난 17일 빈과일보 사옥을 압수수색하고 자산을 동결했으며, 편집국장 등을 체포해 기소했다.

또 전날에는 빈과일보 수석 논설위원을 체포했다.

경찰은 2019년부터 빈과일보에 실린 30여건의 글이 홍콩보안법 상 외세와 결탁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의 거센 압박에 빈과일보는 결국 전날 폐간을 발표했다.

prett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