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중신문 빈과일보 폐간 선언…"내일 마지막 발간"(종합2보)

입력 2021-06-23 18:07
수정 2021-06-24 11:32
홍콩 반중신문 빈과일보 폐간 선언…"내일 마지막 발간"(종합2보)

"오늘 자정부로 작업 중단 결정"…모회사 발표보다 이틀 앞당겨

선정적 대중매체로 출발…홍콩보안법 못 넘고 26년 역사 마감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반중매체 빈과일보(?果日報)가 24일 마지막 신문을 발간하고 폐간한다.

빈과일보는 23일 홈페이지를 통해 "오늘 자정부로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24일이 마지막 지면 발간일"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빈과일보의 홈페이지는 오늘 자정부터 업데이트가 중단된다"고 전했다.

빈과일보는 "지난 26년간 사랑과 지지를 보내준 독자와 구독자, 광고주와 홍콩인들에 감사한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앞서 이날 빈과일보 모회사 넥스트디지털의 이사회는 "늦어도 이번 토요일인 26일에는 마지막 신문을 발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빈과일보는 그로부터 1시간여만에 별도의 입장 표명을 통해 넥스트디지털의 발표보다 이틀 이른 24일이 마지막 신문 발간일이라고 밝혔다.

빈과일보는 마지막 신문에서 100만부를 발간할 것으로 알려졌다.



빈과일보는 사업가 지미 라이(黎智英)가 1995년 6월 20일 창간했다.

중국 광둥(廣東)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파산한 의류 공장을 인수한 후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Giordano)를 창업, 아시아 굴지의 의류 기업으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9년 중국 정부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에 충격을 받은 그는 1990년 넥스트 매거진,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해 언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빈과일보는 처음에는 파파라치와 선정적인 보도로 대표되는 영국 타블로이드지와 같은 길을 걸었다.

성적인 보도와 가십으로 도배돼 논란의 중심에 섰고, 특이한 방식으로 신문을 홍보하는 지미 라이에게는 '제정신이 아닌 미치광이 사업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그러나 빈과일보는 2002년 둥젠화(董建華)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 취임한 이후 정치문제에 집중된 보도를 내놓으며 중국과 홍콩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중국 지도부의 비리와 권력투쟁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해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 매체로 떠올랐다.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때는 종종 대중의 시위 참여를 촉구했고, 경찰 폭력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지미 라이도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에 직접 참여하며 홍콩 범민주진영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중국 관영매체와 홍콩 친중세력은 그를 외세와 결탁해 홍콩 정부를 전복하고 홍콩의 독립을 선동하는 인물이라고 몰아세웠다.

이어 지난해 6월30일 홍콩보안법이 발효된 후에는 그와 빈과일보가 홍콩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그는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8월 체포됐고 12월 기소됐다.

라이는 미국 대선과 관련해 스캔들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대선에서 라이의 자금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보고서 작성 프로젝트에 흘러간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당시 라이는 홍콩 등 이슈와 관련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상태였다.

그는 지난 4월과 5월에는 2019년 3개의 불법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총 징역 2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국은 그의 자산도 동결했다. 동결된 자산 규모는 5억 홍콩달러(약 727억원)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은 지난 17일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빈과일보 사옥을 급습해 압수수색을 펼치고 편집국장 등 5명을 체포하고 이중 2명을 기소했다.

또 회사 자산 1천800만 홍콩달러(약 26억 원)를 동결했다.

경찰은 빈과일보에 실린 글 30여편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은 빈과일보의 논설위원 1명을 외세와 결탁 혐의로 체포했다.

빈과일보의 자매지인 넥스트매거진도 빈과일보의 폐간 선언 몇시간 전 폐간을 발표했다.

당국이 홍콩보안법으로 압박하고 자금줄까지 막아버리자 빈과일보는 결국 문을 닫게 됐다.

한 때 하루 50만부를 발간했던 빈과일보의 최근 일일 판매부수는 약 8만부로 알려졌다.

빈과일보 폐간으로 약 800명이 실직하게 됐다.

홍콩 명보는 전날 사설을 통해 "빈과일보가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폐간에 이르게 됐다"며 "당국이 자금줄을 끊으면서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미 라이가 정치적 도박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 결과 미디어 그룹 전체를 잃게 됐다"고 전했다.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빈과일보를 구매하며 응원을 보냈다.

지난 21일 밤 9시30분 빈과일보 홈페이지에서 마지막 온라인TV 뉴스가 방송될 때 3만여명이 로그인 했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홍콩의 유일한 민주진영 신문이 문을 닫게 됐다"고 보도했다.



한편 대만 빈과일보는 홍콩 빈과일보의 폐간 발표 후 성명을 통해 "대만 빈과일보의 운영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빈과일보는 홍콩에서는 1995년부터, 대만에서는 2003년부터 각각 발행돼왔다.

다만, 대만 빈과일보는 경영 악화로 지난달 17일자를 끝으로 지면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판만 유지하고 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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